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Jul 19. 2022

소년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

영화 <가버나움> 리뷰


소년은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한다. 왜 이 소년은 부모를 고소한 걸까. 기적이 일어났지만 몰락한 곳, 가버나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열악한 좁은 공간에 아이 6명이 방치된 이곳은 자인의 집이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자인은 생계를 위해 어린 동생들과 함께 나가 매일 매일 일한다. 이렇게 고단한 삶 속에서도 주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어려서 한없이 작은 자인의 힘은 역부족이다. 동생만큼은 꼭 지키고 싶던 자인은 부모에 의해 팔려 가는 동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에서 나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외칠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마법처럼 그 공간에 가만히 앉아있던 자인은 아이들의 공간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동한다. 일할 곳을 찾지만, 어린아이를 채용하는 곳은 없었고 그곳에서 라힐을 만난다. 불법 체류자이지만 아르바이트하며 아들 요나스와 함께 살고 있었다. 라힐은 자인을 데려가 씻기고 요나스를 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삶을 지속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집에서 자신의 서류를 챙기러 왔건만, 그토록 지키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었던 동생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나고 자란 것과는 다르게 살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달렸다. 어른보다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자인은 쭉 자라온 환경과 비슷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보아준 사람의 아이를 돌보아 주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아이들을 방치/학대하고 11살인 딸을 돈으로 팔아 출생신고가 안되어 있어 수술도 못받고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또 아이를 가진 부모의 모습을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인간다움을 저버리고 이런 삶에서의 선택지가 이것뿐이라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분열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집이라는 공간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누구든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식을 팔아넘긴 부모와 자식을 위해 불행을 끌어안은 부모를 옆에서 본 자인은 나고 자란 것이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등록되지 못한 삶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기본적인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에 의해 유령이었던 자인이 범법자가 되고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인이 된다.   


  


자인은 그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던 자인은 이제야 웃는다.
자인의 웃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해진다.

     

자인, 행복해야해.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에게 들었던 가장 최악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