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를 보았다> 리뷰
복수를 할수록 허무해지는 순간들은 당연한 악과 그렇지 않은 선 앞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왜?’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영화의 흐름이 ‘완전한 복수’에 대한 무의미함으로 다가온다. 수현의 계속되는 복수는 통쾌하지만은 않다. 광기의 충돌과는 별개로 그 공포 앞에서 끊임없이 두려움에 휩싸여야 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마주 보아야만 하는 고통이 화면을 넘어 관객에게까지 다가오는 불편함을 영화의 상영시간 내내 느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장경철, 그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수현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절대적인 악 앞에 결코 생길 수 없는 개연성은 영화 안에서도 밖에서도 납득되지 않은 채 혼란을 가중한다. 특히 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지나친 잔혹성이 납득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당연하게도 장경철은 무가치한 악의 존재지만 수현은 선을 대표하기엔 의뭉스러운 행동들이 일반적이라고 하기엔 당혹스럽다. 마주한 순간부터 악이 선을 빨아들인 걸까.
그 두 사람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복수를 하면 할수록 시원해지지 않는 마음과 내면의 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폭력의 빈자리에 누군가의 고통만이 자리 잡아 있다면 무한 굴레는 결코 끊을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다. 수현의 마지막 선택이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결말은 통쾌하면서도 동시에 사적 복수의 영역이 되풀이되며 거세게 휘몰아치는 장면이 연상된다.
잔인한 영화를 잘 보는 편이지만 끝까지 보기가 굉장히 꺼려졌던 영화였다. 가상의 존재로 인해 이렇게 불쾌하고 두려운 감정을 들게 하는 영화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었다. 악에 대한 이해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더 집중해서 보았던 영화 '악마를 보았다'였다. 영화의 비하인드 중에 최민식 배우가 살인마의 '살'자도 다신 안 하고 싶다고 했던 인터뷰가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친하게 지냈던 이웃이 친근감을 표시하며 반말로 말을 건네자 '이 새끼 왜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본인에게 섬뜩함을 느꼈다는 일화다. 이렇게 장경철과 수현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시원한 쾌감보다는 잔혹한 피폐함에 스며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