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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Sep 21. 2022

타협에서 변화로 옮겨가는 이야기.

영화 <두 교황> 리뷰


경멸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늘 소박하게 사는 한 추기경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에게 온 편지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차기 교황 자리를 제안하는 편지였던 것이었다. 교황청으로 초대받아 장소를 옮겨가며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어떻게 해서 교황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로 빼곡히 채우지 않는 모습에 친근하기도 하고 묵직한 이야기들로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실화 바탕의 '두 교황'은 넷플릭스에서 발견한 수작이다.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어도 보면 좋을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서 리뷰를 쓰게 되었다.



종교에 관심도 없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던 나에게 왜 종교를 믿는지를 알려준 영화였다. 온전한 이해는 어려웠지만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의도와는 다르게 미치는 수많은 영향력을 지켜봐 왔고 권력의 맛을 본 이상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행동을 통해 성찰을 배웠고 언행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타인이라서 함부로 행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는 반성과 깨달음을 통해서 타협했던 지난 과오를 변화로 옮겨 간다.



변화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다른 이로 하여금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잘못은 수많은 죄책감의 무늬다. 얼룩덜룩한 상처는 준 이나 받은 이를 모두 괴롭게 만든다. 타협의 결과는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기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 자체는 용서의 시작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과오를 직면하지 않는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자신의 안위로 인해 놓친다면 돌이킬 수 없다. 용서를 구하는 이에 대한 시선은 있지만 용서를 하는 이에 대한 시선이 없어 조금 아쉬웠다.  용서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건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복수라는 건 너무 당연하게도 무의미한 것이지만 그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 이상 지속되는 마음에는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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