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Mar 14. 2023

너의 그림자가 나였고, 나의 그림자가 너였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리뷰


가족 이외의 존재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주는 존재는 단짝 친구다. 그렇게 관계가 발전하여 늘 함께할 수는 없지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같이 있기만 해도 편한 존재가 되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양분을 마련해 주는 존재가 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그 오묘함을 나타낼 수 있는 감정은 친구라는 이름을 넘어서 '소울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며 어떤 순간에도 함께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몇 번을 봐도 먹먹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소설 원작 <칠월과 안생>으로 2017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주동우 배우와 마사순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열셋, 운명처럼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열일곱, 우리에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스물, 어른이 된다는 건 이별을 배우는 것이다.
스물셋, 널 나보다 사랑할 수 없음에 낙담했다. 스물일곱, 너를 그리워했다.


칠월과 안생.

정해진 결말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게 한다. 현재의 시점에선 누군가가 사라진 채, 그 빈자리를 홀로 메꾸고 있었다. '칠월과 안생'이라는 책과 함께 펼쳐지는 과거는 그때를 비추며 13살의 첫 만남을 조명한다. 숙명과도 같았던 우정은 처음부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모든 것이 달랐지만 우정의 힘으로 추억을 쌓으며 기억을 채워갔다. 다름의 소중함을 알기에 언제나 함께했고 더욱 특별했다. 칠월이 안생의 그림자가 되기도 하고 안생이 칠월의 그림자가 되어 언제나 함께했던 두 사람은 서로가 평생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언제나 함께했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우정과는 다른 사랑이라는 감정이 등장하기 전까진. 운명은 잔혹하고 인연은 영원하지 않았다.


어떨 땐 칠월이 안생의 그림자였고,
어떨 땐 안생이 칠월의 그림자였다.

둘은 책에서 보았다.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으면 그 사람은
 평생 떠나지 않는단 얘기를.


관계의 빛바램.

서로의 다름이 빛바래지지 않으려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다름의 소중함을 존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에 대한 애정의 형태를 변함없이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항상 서로를 마주하던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이 된 걸까. 이유는 간단하게도 너무 가깝기 때문이었다. 초반의 순수한 사랑과 환상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는 현실이 보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느꼈던 생각들이 모여 더욱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오해가 파괴로 이어져 단단해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의 우정은 산산조각 나고 만다. 깊을수록 도려내기 힘들고 도려낼수록 아픈 형태로 솟아나는 마음은 왜 이리도 생생한 것인지. 다름이라는 단어는 참 특별했는데, 다른만큼 큰 상실을 가져다준다.


이별을 너무 슬프게 만들지 마




안생은 칠월, 칠월은 안생.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우정은 부유하는 마음으로 인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된다. 안생과 칠월 사이를 오갔던 그 마음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떠나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그 자리를 머문 이를 끝끝내 외면한다. 그렇게 어떤 흔적만을 남긴 채, 늘 그랬던 것처럼 돌아온다.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선택의 길로에 서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느끼는 것들은 안생의 현재마저도 바꾼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이상적이었고 이상적이어서 현실적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좋지만 자신을 갉아먹으며 나아가는 삶이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이 참 덧없다고 느꼈다. 가치 없는 삶은 없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내 삶은 가치 있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친구가 아닌 내가 나일 수 있는 삶에서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자유로움과 따뜻함.

방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조금은 다른 형태로 칠월에게도, 안생에게도 찾아왔다. 다른 형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모습은 정해진 삶을 규정하지 않는다. 안정을 추구하던 칠월은 밖으로 나가고 늘 자유를 바랐던 안생은 안으로 들어간다.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를 항상 품고 있었음을 그들은 그 불안한 마음에 가려 보지 못했다. 그들의 시간도 타이밍도 참 많이 달랐다는 것을 깨닫기엔 참 많이 멀어졌을 때였다. 하지만 안생은 우리의 사랑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안생을 칠월로, 칠월은 안생으로 치환했다. 익숙함은 그토록 짙으며 잔인하게만 흘렀고 그들은 돌고 돌아 서로를 마주 본 채 서있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관계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이 두 사람을 표현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그 오묘함의 형태 속의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영화를 보면서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예전만큼 볼 수 없어서 아쉽고 왠지 모르게 소원해진 이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간 관계, 현재 지속되고 있는 관계는 그토록 순수한 감정이었지만 참 많이 달라진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에 의해 변한 현재의 모습이 또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두렵다. 지금과는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소중한 존재이지만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타인은 결코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며 인생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없다. 우리는 이따금 불확실한 것 투성이에서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부족함의 연속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민낯이다.




바래지지 않는 영화를 바라보다.

나는 바래지지 않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 영화 또한 언제 봐도 그 애틋함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너무 좋았다. 처음 봤을 때의 감정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지만 다시 보아도 아름다운 영화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실 다시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된 건 증국상 감독의 <안녕, 나의 솔메이트>가 민용근 감독의 <솔메이트>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어 3월 15일에 개봉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에 다시 한번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고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영화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뭉클해졌다. 원작의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더욱 기대가 되는 만큼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