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혜옥이> 리뷰
공시생과 도박꾼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될 거라는 중독적인 희망으로 인해 끊임없이 시간, 돈,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다.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몰비용의 오류를 행하며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되는 굴레에 빠지게 된다. 오늘 소개할 영화 '혜옥이'는 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갇힌 한 사람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스릴러보다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12월 8일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끊임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진 순간을 연출하며 현실감이 돋보인다.
언덕으로 올라가며 덜컹이는 자동차 소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공부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구하게 되고 이 집에서 산 사람들은 모두 합격하여 나갔다는 말에 매료되어 이 집을 선택하게 된다.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함께 집에 들어선 두 사람은 연신 파이팅을 외치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명문대를 졸업한 수재인만큼 공무원 시험도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으로 시작한 만큼 순조롭게 첫 시험에 1차 합격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2차에서 떨어지며 끊임없이 하락하는 자신의 성적표를 바라보게 된다. 과연 라엘은 합격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장면으로 미루어 보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라엘은 끊임없이 도전할 수밖에 없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고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며 무엇보다 딸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모습 때문이었다. 믿어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라엘이 받아들이기엔 벅찬 순간의 연속이다. 계속 반복되는 일들로 인해 지쳐버린 라엘은 미처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삼키지만 압박과 덩달아 시작되는 재채기가 라엘의 전부를 뒤덮는다. 압박의 굴레에 빠진 라엘의 모습이 더욱 진땀을 쥐게 만든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압박을 가장한 응원 소리는 이 긴 수험 생활을 더욱 벅차게 만든다. 누군가의 욕망으로 인한 꿈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희망에 휩쓸린다. 라엘이 혜옥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될 때까지 그만둘 수 없는 수험 생활은 '거짓'을 만들어 내고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어렵게 다가온다. 압박감으로 가득했던 생활과는 달랐지만 단절된 채 살아왔던 사회에 적응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끊임없이 제자리를 맴돌게 한 상황에서 벗어나 온갖 날카로운 차가움에 맞서기엔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각박한 사회, 불안정한 개인이 불확실한 현실을 겪는 모습이 영화 '혜옥이'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불편한 마음과 가치가 떨어져 온갖 불순물이 묻어나는 돼지고기와 혜옥이 번갈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그와 동시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마음은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기엔 다소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수험생활을 했던 지난 과거가 생각났고 지난날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가져왔던 죄책감에 나 자신에게는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지 못해 나 자신을 많이 괴롭혔다. 때론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도전을 했기에 실패했고 실패했기에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니 결코 절망으로 남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