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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an 06. 2023

사랑으로 이어지는 어떤 기다림.

영화 <3000년의 기다림> 리뷰


이야기는 우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 오묘함의 체계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체다. 나에게 도달하면 곧 시선을 떼는 모습처럼 그리 특이하지 않아도 보통의 모습처럼 존재하고 있다. 태초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 기묘하고도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을 소개한다.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선 공개되어 1월 4일에 개봉한 조지 밀러의 신작이다. A.S. 바이엇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



이야기의 이야기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한 사람의 눈에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알리시아를 붙잡는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그런 혼란스러움과 신비로움을 거쳐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연속이다. 손에 가릴 듯 가려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흐르다가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현실적인 것들이 눈앞을 맴돈다. 본래의 목적을 넘어서는 신비의 존재에 대한 대향연은 풍부해진 상상력 때문일까. 이스탄불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나이팅게일의 눈'이라는 유리병을 구매하여 먼지를 닦아내던 알리시아는 곧 눈앞에 나타난 어떤 존재로 인해 혼란이 가중된다. 내가 아는 그 지니가 이 거대한 괴물이라고?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

눈앞에 존재하는 거대한 괴물의 정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가 맞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진(جن/Djinn)이라고 한다. 아랍 전승에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인 진은 3가지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들어주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런 진이 어떻게 알리시아의 눈앞에 나타나게 된 걸까. 진이 알렉시아의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 또한 그의 욕망으로 비롯된 소원에 의한 것이겠지만 많은 우화를 통해 쉽게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런 알렉시아의 모습을 본 진은 그녀가 소원을 빌 것을 촉구하며 설득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진, 3가지의 욕망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욕망을 제외하고는 어떤 형용사를 붙이기도 감히 어렵다. 우리가 마침내 해내야 할 이야기의 중심에도 역시 욕망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뒤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세 번째 소원을 빌기도 전에 욕망에 삼켜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소원을 안 빌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이야기의 중심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마음의 소원으로 이룰 수 있는 소원의 해방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성 해방을 외치기 이전, 과거는 복종을 요하는 가부장적인 제도를 따르는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 지식은 올바르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눈에 띄는 이방인이 되게 만드는 한계에 치닫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였다. 자유보다 중요한 지식 탐구, 자각의 한계를 느꼈던 제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을 뒤로한 채, 오직 지식만을 갈구했다. 수없이 욕망에 삼켜지는 이들을 지켜봐 왔던 진은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해방의 순간을 벗어나 다시 기다림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만다. 몇 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의 욕망은 사랑, 사랑이었다.



보여야 믿는 세상.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알렉시아의 동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상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감히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 또한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표현이 점점 스며드는 이야기가 먼 거리에서 듣는 신화가 아닌 이야기로 자리 잡으며 몰입감을 더한다. 다만 시각적인 화려함과 동시에 여기저기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덕지덕지 이어 붙은 것처럼 너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볼만한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근본, 사랑.

수많은 이야기가 지나고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떨어진 첫마디는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임에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알렉시아는 실존하는 인물 대신,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배워왔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을 견뎌왔던 진과 이야기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나 그런 행위를 함과 동시에 의도치 않게 사랑을 실현하는 근본적인 힘을 앗아가게 된다 당신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자질구레한 욕망으로 인해 당신이 편치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보내주는 것이 사랑의 근본이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영원히 지속될지도 모를 이 고통을 기꺼이 견뎌낼 것이다. 수많은 불행과 고통의 수단으로 바래져 왔던 사랑은 현대에 비로소 순수한 의미를 가지며 사랑의 힘을 되찾는다. 비록 해방을 위한 기다림이었을지 모를 그 오랜 기다림은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기다림으로 치환되어 오래 머물고 간 이곳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그 바래지지 않는 마음은 본래 인간의 근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갖는 초월적인 힘을 믿는다면 보일 이야기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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