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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an 19. 2023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리뷰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창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원작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만의 차별성이 느껴져야 잘 만들어진 재창작물이 된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의 미세한 감정선을 영화에 잘 드러내는 기예르모 델토로에게는 역시 어렵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사회의 빛과 어둠을 섬세하게 조절하여 기존의 피노키오를 신기하고 또 재미있으면서 감동까지 이끌어낸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를 잘 풀어낸 영화 ‘기예르뮤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넷플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움의 열망이 만들어낸 생명.

전쟁으로 인해 아들을 잃게 된 제페토는 후회와 그리움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주변의 모든 것이 다 바뀌었지만 어떤 것도 완성할 수 없는 채로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제페토는 그 시간에 갇혀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의 열망이 강렬하게 피어나는 밤을 보낸다. 우연이 만들어낼 불완전한 인연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현재의 슬픔을 덜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한 우연함이 만들어낸 인연, 그 사이의 공백을 채워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은 존재들을 위한 힘.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주변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의 연속으로 절망의 늪에 빠져있는 제페토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힘이 집 안 곳곳에 스며든다. 공허한 마음의 틈새를 찾아온 영혼과 수호자에 의해 이름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며 정해진 운명이 뒤틀린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피노키오는 모든 것이 새롭고 궁금했던 탓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을 둘러보며 집 안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제페토는 피노키오의 돌발 행동들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낯선 아이와 길을 잃은 어른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던져진 꼭두각시 인형.

신의 자비는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반감으로 돌아온다. 신성 모독을 빙자한 혐오의 언어들이 흩어진다. 모르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들은 공격적으로 그 대상을 짓밟으려 한다.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만이 자리 잡은 듯하다. 그 두려움은 곧 인간이 적개심을 가지는 기본 바탕이 되어 악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용할 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피노키오를 끊임없이 착취하려 한다. 어떤 것도 스며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려는 손들이 뻗쳐오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라스폰 트리에의 영화 '도그빌'이 생각났다. 처음엔 순수하고 또 선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약점'을 드러낸 이를 보고 착취하는 내용의 이야기인데, 참 많이 닮아있었다. 인간의 본질은 어쩌면 어둠으로 가득한 웅덩이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시작은 제페토의 마음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저 던져진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했나 보다. 그렇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목소리에 비해 공허한 마음은 진실이 드러나며 더욱 잔혹하게 느껴진다.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

현재에 있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대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를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피노키오는 카를로가 될 수 없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후회하는 말은 뒤늦게 후회를 자각하더라도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오는 사랑보다 슬픔에 잠긴 자신에 집중하던 제페토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피노키오'를 이제야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로서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낳는 행위만으로 생길 수 있는 사랑은 키우는 행위로도 생길 수 있다는 너무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이별로 인해 텅 빈 마음을 채우는 건 역시 사랑이었다.



어쩌면 끝나지 않을 이야기.

현재에서 과거로 흐르는 슬픔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을 통해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다. 어릴 때 보았던 피노키오에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새로 창작된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채 태어나 삶을 시작하고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며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태어난 피노키오가 어떠한 경험 없이 삶을 시작하면서 겪는 일들을 통해 인간과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이 의미 있는 이유는 생이 짧기 때문이다. 인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생이 짧기 때문이다. 수많은 죽음을 맞이해도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피노키오는 끊임없이 죽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영원히 살아갈 그 고통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고통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거짓말이란 코처럼 뻔히 보이는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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