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펜서> 리뷰
극 초반의 분위기는 다이애나의 상황과 감정 그대로를 옮겨가 시종일관 답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내내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묶어 두는데, 영화를 보는 관람객에게도 족쇄를 채워 그와 같이 갑갑함과 불안함을 꼭꼭 채워 넣는다. 아직도 목이 갑갑한 느낌이다. 왕실 자체의 딱딱함도 다이애나를 괴롭혔지만, 파파라치들이 다이애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마치 현미경처럼 그를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담으려 해 그의 괴로움을 더한다. 그 모습에 왕실에서는 찍히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감시하기 시작하며 거대한 새장에 갇히게 했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하며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만 하는 꼭두각시처럼 다이애나는 다이애나라는 이름에 갇혀 끊임없이 웃는다. 동시에 아름다움에 갇힌다.
“여긴 시제가 하나뿐이야. 미래가 없지, 과거와 현재는 매한가지고”
웃는 외면과 우는 내면이 충돌하면서 그 안의 불안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지만 붙잡고 일어날 곳이 마땅치 않다.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들과 늘 옆을 지켜주는 매기는 이 커다란 공간에서 매우 작은 존재지만 그에게는 큰 존재다. 선한 마음으로 주변에 베푸는 성정은 고고한 왕실의 모습과는 대비적이다. 그래서인지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 겉도는 다이애나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했기에 마음을 꺼둔 후, 무게가 나가는 장신구를 두르고 자신을 조른다. 뱉어내고픈 욕구를 끝끝내 참으며.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미화된 억압은 내면의 모든 것을 갉아먹고 다이애나로 모자라 스펜서를 갉아먹으려 든다. 설령 그가 선택한 삶이라고 해도 그가 고통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라는 게 생길수록 더 멀어지는 현실과 아무리 커튼을 쳐도 들춰내는 이들과 끊임없이 비난하려 드는 이로 병들어 간다. 모두가 그를 미쳤다고 말한다. 그 짓밟혔던 마음과 날지 못했던 날갯짓이 자신이 본래 있었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면서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기적을 발견한다.
갑갑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으로 덮인 허수아비에서 벗어나 다이애나가 아닌 스펜서가 된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스펜서 다이애나가 사랑했던 영화였던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본 날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이해하기 힘든 독특함으로 수렴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사랑한 이유는 그 독특함이 억눌린 해방감을 펼쳐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는 잠깐의 시간이고 정지 버튼도 있지만 스펜서 다이애나에게는 정지 버튼도 없는 그의 삶 자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느끼고 그가 사랑한 영화를 통해 더 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