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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an 31. 2023

영원하고 온전한 마음은 존재하는가.

영화 <쥴 앤 짐> 리뷰


기존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은 '모노아모리(monoamory)'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사랑하는 것이다. 반면 이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폴리아모리(Polyamory)'라는 개념은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의 사랑을 일컫는다. 비독점적 다자연애라고도 하는 이 관계는 모노아모리와 같이 합의에 의해 시작되는 관계이다. 각자가 지향하는 관계의 척도가 달라도 신뢰를 통해 이루어진 만남은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까. 사랑의 유효기간, 그 격렬하고 유효한 물질의 한 형태를 드러내어 이들의 사랑이 과연 가벼움의 형태로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주어지지 않은 정답 속에 사회 통념상 규정되는 사랑의 의미를 뒤엎는 영화 '쥴 앤 짐'을 소개한다.





사랑의 중심, 카트린

이 시대에 표현되었던 '여성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까트린은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어떤 단어로도 규정할 수 없음에 끌리는 것일까. 사랑을 넘어선 감정이 카트린에게 쏠린다. 여러 장면에서도 나왔듯이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며 현실과 맞서는 카트린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간다. 거짓을 태우기도 하고 편견에 개의치 않으며 자유를 위해 몸을 내던질 정도로 우직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한다. 어쩌면 카트린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쥴 앤 짐.

의미부여라고 할 수 있는 언어들이 스쳐 지나가며 우연한 만남이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문화 예술을 향유하며 문명을 쫓다 낭만에 도달하며 사랑에 빠진다. 오래된 조각상의 미소를 닮은 카트린은 직접 마음을 표현하는 쥴과 우정을 지키기 위해 뒤에 물러서 있었던 짐을 만나게 된다. 다양해진 만큼 정착하고픈 쥴과 여전히 곳곳을 머무는 짐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 혼란에 적응도 하기 전에 시작된 전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멀어지며 공간의 여백이 커진다. 쥴은 짐을 짐은 쥴을 죽일까 두려워했던 상황을 지나 그토록 그리워했던 자유분방함과 억제된 대담함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것도 갈라놓지 못했던 그들 사이의 사랑의 시한폭탄이 쥴과 짐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가벼이 여겼던 것들을 카트린에 의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서로 사랑하잖아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생각의 크기가 제각기 다른 만큼 서로가 추구하는 사랑의 형태 또한 달랐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빠져드는 사랑의 힘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모습이다. 절대적인 사랑(쥴)과 상대적인 사랑(짐)으로 인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마음은 또 다른 모습을 보이며 혼란스러움을 가중한다. 이제는 완전한 정착은 다가오는 이별의 원점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자유롭고도 무한한 사랑을 위한 또 다른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되지 않는 언어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이들은 진정한 순수함에 의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겠지만 사랑 그 자체의 청춘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끝이 끝임을 아는 것.

황량한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은 또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려 한다. 되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존재를 이제는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던 과거와는 달리 완전한 결합을 위해 안정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장면처럼 여겨진다. 그동안 추구하던 이상을 내려놓는 순간에 마주하는 현실이라는 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자유를 쫓지만 삶의 무게에 놓이게 되면 현실을 모른 채 하기는 힘들다. 점점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유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 한 선택이 사라지고 나서야 의미를 되찾기 때문이다. 그들이 꿈꾸는 모든 것들 중의 하나인 사랑과 이어지는 결혼은 이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특정한 지점에 도달한 짐과 그렇지 못한 쥴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나 싶었지만 결국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사이를 맴도는 사랑하는 마음은 유효기간이 다한 듯 끝을 달려간다.



사랑해, 기다려, 날 데려가, 가버려.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폴리아모리라는 개념 자체가 잘 다뤄지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난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곱씹어 볼수록 시간을 초월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리 멀지 않게 여겨졌다. 익숙하지 않거나 나와 맞지 않는 의견이라고 해서 결코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따금 전해지는 말의 무게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 자체가 쥴과 짐의 초점에 맞춰져 다소 부족한 이야기에도 나도 모르게 카트린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정의하지 않음에 흔들리는 것 같아 보였지만 끝끝내 자유를 쟁취하고야 마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넌 내게 말했다. "사랑해"
난 네게 말했다. "기다려"
난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날 데려가"
넌 이렇게 말했지. "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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