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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y 30. 2023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

영화 <말없는 소녀> 리뷰


제7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2관왕을 비롯하여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도 올라 세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영화 <말없는 소녀>가 5월 31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클레이 키건의 <Foster>이라는 단편소설이 원작이며 최근 한국에서도 <맡겨진 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불안으로 가득했던 소녀의 내면에 사랑의 따뜻함이 닿아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이다. 조용하면서도 따뜻하고 또 잔잔한 분위기의 향취를 느낄 수 있어서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끝까지 놓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해 꼭꼭 씹어 삼켜 넘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이 생각나기도 한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가버린 이 영화를 기회가 된다면 꼭 영화관에서 만나기를 추천한다. 


*Foster 위탁 양육, 친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양육하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0LT_NeHia6I


어른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이에게 잊히지 않는 경험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겉도는' 아이인 카이트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다. 항상 주눅 들어있고 말도 많지 않은 카이트는 방학이 되자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다.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집에서 낯선 곳으로 오게 된 카이트는 '말하는 것'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카이트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진심으로 대하는 그 모습이 소녀로 하여금 따뜻함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해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렇게 서로의 사정에 의해 떠밀리는 아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뒤덮인 아이가 된다.



따뜻함으로 채워가는 소녀의 시간.

제약이 많았던 집과는 달리 침묵을 인정해 주고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에블린에 의해 카이트는 조금씩 변한다. 쑥스러움이 많았던 초반과는 달리 의사표현도 하고 밝게 지내는 모습이다. 무뚝뚝했던 션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였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표현하지 못했던 낯섦에 의한 것이었고 그 사소함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우연함이라 치부할 수 없는 따뜻함은 진심이 되었으며 진심은 마음에 새겨진다.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대항하기 힘들어지는 사랑의 힘은 또 다른 슬픔을 가져왔다. 행복한 시간은 왜 이리도 짧은 건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마지막을 불러온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진정한 부모라는 것.

단 한 번도 준비해 본 적 없었던 이별은 카이트는 물론이고 이들 부부에게 크나큰 슬픔을 가져다준다. 당연하지 않아서 더욱 당연했던 사랑이라는 무게 앞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달리기는 이 순간을 위하기라도 한 듯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이들을 따라잡는다. 한 번도 꺼내본 적 없었던 마지막 순간을 만들어낸다. 감동적이고 참으로 따뜻했던 그 순간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카이트에게 행복한 결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 부부와 함께 돌아가 여전히 따뜻한 사랑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아이를 둘러싼 사랑.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에서 표현하는 영화의 흐름은 섬세한 감정선을 포착한다. 어른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이에게는 잊히지 않는 경험의 순간을 그리며 그 따뜻함을 더욱 잘 표현해 낸다. 에블린과 션의 손길, 식탁 귀퉁이에 놓인 과자, 눈빛을 비롯한 그 수많은 따뜻함은 화면 너머에도 전해지며 여운이 짙게 남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보살핌'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카이트는 그저 약간의 보살핌이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충족되지 않았던 집에서 말없는 소녀가 되었던 것이다. 이유 없이 꾸짖지 않는 이들에게 배운 것들은 소녀의 세계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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