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리뷰
<유전>과 <미드소마>를 통해 현대 공포의 한 획 그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7월 5일 개봉했다. 자신의 단편 영화 <보>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10년 동안의 작품 구상을 끝으로 무사히 장편영화로 탄생했다. 파격적인 소재와 세밀한 감정표현이 돋보이는 영화로 가장 아리 에스터 감독 다운 작품이라고 한다. '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심리를 따라가는 여정을 그렸는데, 그 과정을 꽤 정밀하게 드러내며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해하여 해석하는 영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더욱 잘 보인다. 사소한 것에서 불안감을 지니고 있는 '보'라는 사람은 왜 그렇게 겁을 먹은 걸까.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 세계로 들어가 보자.
상담사와 심리치료를 하는 중년 남성, 보. 그는 상담 중에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를 애써 무시하며 질문에 대답한다. 솔직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끝난 상담, 상담사는 약을 반드시 물과 함께 먹으라는 경고를 빼놓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서 마주하는 불안한 요소들은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보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힘겹게 집으로 들어와 내일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일찍 잠이 든다.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음과 여러 가지 방해 요소들로 인해 늦잠을 자게 되고 비행기 시간에도 늦게 된다. 어떻게든 다시 나가보려고 하지만 상황이 계속 꼬여 여간 쉽지 않은 상황이 된다. 어머니는 화가 났고 불안은 가라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깥의 위험 요소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과연 보는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보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들로 이야기를 채워간다. 그의 의견에 반박하는 말들은 죽음 혹은 침묵으로 돌아와 '무소음'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 과정이 생략되며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보는 이들은 보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거나 겁을 먹었거나 적대적이다. 오로지 자신의 시선에서 바라봐서인지 보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영화 내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불안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영화의 전개가 지속될수록 보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의 인생 전부를 관통하는 동화만큼은 보의 일방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면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 보에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불안 자체도 실체 없는 걱정에 의해서 발병된 것이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관점에서 시작되어 끝을 맺을 줄 모른다. 그저 동화로 생각하여 좋은 결말을 맺고 싶었던 착각은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이기심으로 가득 찬 그의 추악함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었다. 보는 외형적으로 성인의 모습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세상에 갇혀 아무리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과거에 머문 모습을 돌아보지 못한 채 잠식된다. 이 모든 일은 보가 만들어낸 환상인 걸까.
어머니 모나
철저하게 어머니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보는 통제의 대상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가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손에서 피워내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의 불안은 잠재의식이 아니라 어머니에 의한 억압과 통제로 인한 인위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불안인 것이다. 사업가였던 그녀는 보의 모든 것을 많은 인력을 동원해 통제할 수 있었고 그 상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그에게 벌어지는 상황이 어머니에게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갈 곳이 없게 만드는 상황도, 어머니를 향한 여정도 모두 만들어진 상황이었다면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해소되기도 한다.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약간의 변수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여전히 보는 그녀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의 철저한 이기심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히스테릭하고 다소 학대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은 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엄마인 모나 가 만들어낸 통제의 일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유리한 모든 상황에서 그녀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불안에 잠식되고 만 그의 모습을 보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물에 가라앉은 보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 모나의 표정과 대비되는 오열이 그 자리에 남는다.
토니와 일레인
영화에는 많은 여성들이 출연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두 사람은 토니와 일레인이다. 이 정해진 극에서 그의 불안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직면할 수 있는 존재였고 한 사람은 자신을 솔직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속에서 발견한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착각의 순간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은 그가 자유 의지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희망을 준다. 이 여정의 끝엔 그가 바라던 것들이 모두 놓일 것 같이 순조롭다. 쉽지 않은 길로에서 마주한 그레이스와 로저의 집은 두려움을 피해 달려온 보에겐 이 편안함도 불안한 공간이 된다. 아무 이유 없이 잘해주는 그레이스와 로저에게 자신의 존재는 민폐처럼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토니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솔직한 모습으로 자신을 대한다. 반면, 일레인은 통제적 요소이자 불안감의 본질이다. 성관계는 그가 평생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던 하나의 요소였지만 첫사랑이었던 일레인을 통해 하지 못했던 행위를 부모님과는 정반대로 실행하며 성공적으로 마친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정말 감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함을 표정과 목소리로 이토록 완벽하게 표현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호아킨 피닉스의 '보'는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캐릭터로 남을 것이다. 다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영화에서 실제 벌어진 일인지, 그의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상황이 그가 통제할 수 없고 그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면 한 시간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어머니를 향한 내키지 않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자유로 뻗어나가기엔 부족했고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반드시 그곳으로 향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그의 내면을 괴롭힌다. 무엇보다 보는 그들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보를 아는 상황이 그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 불안한 요소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통제된 공간에 갇히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이 허구가 아닌 실제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을 남긴 채. 분명한 건 <오디세이아>와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게 될 것이며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