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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갇혀 현재를 살지 못하는 비극을 되뇌다.

영화 <블루 재스민> 리뷰

by 민드레


우디 엘런의 영화 <블루 재스민>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영화이다.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상영 시간은 98분으로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블루문을 끊임없이 추억하는 그녀의 음성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말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이름에 걸맞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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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모순을 거듭하는 재스민.

뉴욕에서 상위 1%의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재스민은 남편 할인 사기혐의로 인해 교도소에 들어가 자살한 뒤 빈털터리가 된다. 그렇게 동생 진저의 집에 잠시 머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고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것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진저의 남자친구 찰리. 그와 만나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많은 것들이 '하찮은 일'로 느껴졌고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해야 했고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치과 원무과 일을 병행하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쉽지 않은 일을 병행하면서도 참아왔지만 치과의사의 성추행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렇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기 위해 파티에 나가고 그곳에서 외교관 드와이트를 만나게 된다.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서인지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내어 급속도로 그와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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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일이어서인지 그동안 해왔던 일을 내려놓고 그와의 일에 집중한다. 결혼을 말할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는 사실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녀가 안정적일 때는 괜찮지만 불안하게 여겨지는 요소들이 등장할 때마다 신경쇠약은 극도에 이른다. 그녀가 자초한 일들이 조금씩 발목을 잡으며 그녀의 세상을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일들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고 언제나 모른 척을 하는 행동을 통해 분노를 키웠다. 누구도 그녀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재스민은 끊임없이 과거를 돼 놓인다. 과거를 잊은 것처럼 타인의 상처를 외면하던 재스민은 정작 자신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혼잣말은 블루문의 잊힌 가사처럼 흘러 점차 잦아 형체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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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의 삶.

나는 재스민의 삶보다는 진저의 삶에 더욱 흥미가 느껴졌다. 재스민과 진저는 둘 다 입양되었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간다. 현재의 삶을 기준으로 봤을 때, 편애하는 부모님들로 인해 일찍이 독립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고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지만 여유롭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형부에 의해 큰돈을 잃었지만 언니가 곤경에 처해 자신의 집에 오게 되었을 때도 언니라는 이유로 흔쾌히 받아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루이뷔통 가방을 들고 다니고 일등석을 타는 등의 모습과 언니에 의해 여러 번 곤경에 빠지는 경험을 하면서 점차 멀어진다. 허울뿐인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마주하게 된 진저는 적어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마주한 사람이다. 언니의 기준에서는 한없이 모자라고 때론 실패할지 몰라도. 돈이 중점이 되었던 삶과는 다른 것들이 재스민과 진저의 모습으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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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 그리고 나 자신을 정의하는 일.

항상 성공을 맛보았던 사람은 실패에 극도로 두려움을 느낀다. 영화의 재스민이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초한 일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한 번에 일어났기 때문에 과거에 갇혀 사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 상황을 견디기 위해서 그런 화려함을 떠올리며 살아갈수록 현실과 다른 괴리감의 그녀의 내면을 더욱 괴롭히기만 했다. 마지막 그녀가 블루문의 가사를 떠올리지 못했던 것처럼 그 상황은 어떻게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할 때이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을 때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뛰어난 언변과 사교 기술로 다시 재기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 자신을 정의 내리지 못하면 일어나는 일을 그려낸 영화는 다소 흥미로운 부분이 상당하다. 극 중 인물은 다소 제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유도하는 영화의 연출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원작과는 다소 다른 결말이지만 엘리아 카잔 감독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감상하고 또 비교해서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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