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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Aug 16. 2023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에게 펼쳐진 마녀사냥.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불을 전해줬다는 죄로 인해 영원의 벌을 받은 신, 프로메테우스를 아는가. 그처럼 비극적인 일생을 공유하고 있는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표현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8월 15일 개봉했다. 아래 기술되어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서도 봤듯이 인간은 힘을 가지면 그 힘을 올바른 일에만 사용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지난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편안함을 얻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을 몸소 겪어야 했고 여전히 그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모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해야 할까.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을 창조하여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부여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아무런 능력도 부여받지 못한 약한 존재였던 터라 이를 가엾게 여겼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게 된다. 불과 지혜를 얻은 인간은 큰 힘을 가지게 되며 신의 분노를 샀고 제우스는 그런 프로메테우스에게 형벌을 내린다. 불과 지혜는 신적인 존재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금단의 능력이었기에 제우스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던 능력이었다. 그렇게 프로메테우스는 불과 지혜를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후에는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받게 되어 인간 세상에 온갖 재앙이 퍼지게 된다.



프로메테우스와 오펜하이머.

미국의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며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에서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이다.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과 같은 목적으로 일을 실행하지만 상당한 고통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 동일했다. 이미 예견된 비극을 알면서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시 돌아올 평화를 위해서 상당한 희생이 뒤따를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은 불안정했지만 그 외의 것들에게서는 그보다 깊은 확신은 모두가 반대해도 또렷하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의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더욱 진지하게 임하며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한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트리니티'에 성공하여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개의 원폭을 투하하게 되고 일본은 8월 15일이 되는 날, 항복을 선언한다.



외면할 수 없는 비극과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

성공의 이면에는 비극에 의한 참사가 존재했다. 전쟁을 끝낼 수 있었지만 자신이 그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된 결과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는 역사적 사건인만큼 그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에 그치지 않고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하는 미국은 반대하는 오펜하이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오펜하이머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과거 행적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로 몰렸으며 소련 스파이라는 의심까지 받아야 했던 오펜하이머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실제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일부 과학자들이 스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에 대한 의심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매카시즘의 열풍이 무고한 사람들을 몰아가는데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모욕으로 시작된 뒤끝.

영화는 두 인물을 통해 각자가 처한 현실을 다른 상황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청문회 모습은 그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려주며 그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빚어낸 비극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일부를 드러내기 위해 전부를 도려내는 일은 정말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떠한 일의 시작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 일이 위대한 성과를 낸 사람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책임의 무게를 한 사람에게 지게 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등장하는 부분인 것 같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모든 일들이 잘못되었을 땐, 한없이 외면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삶을 판단받는 일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일생뿐만 아니라 그의 내면에 젖어드는 방식을 택한다. 무엇보다 솔직했고 생각이 자유로웠으며 똑똑했던 그는 타인에게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왔을 때, 더욱 대응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정치인에게는 과학자, 과학자에게는 정치인이었던 그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이념에 의해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됐고 다양한 분야나 사상을 접하는 사람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는 일은 단 몇 마디로 쉽게 이뤄지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판단받는 일을 쉽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이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이용되는 것들은 그 목적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역사로서 기록되곤 한다. 처음엔 찬사를 받지만 문제가 생기면 본래 그것을 준 이를 비난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도 한다. 실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는 전쟁을 끝냈지만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오펜하이머는 세상을 바꾼 업적을 가졌지만 오랜 세월 동안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와 오펜하이머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처럼 오펜하이머도 긴 세월 간 오명과 수치를 감내해야 했다. 그의 충성심과 애국심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사망한 지 55년인 2022년이 되어서였다.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면 우리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펜하이머의 삶과 고뇌를 다룬 영화였기 때문에 피해와 참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일본에서는 상당한 비판 여론이 있다고 하며 아직 개봉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로 인해 일본인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노동하는 상당수의 조선인들이 사망했다. 원폭 피해자들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죽어가거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실제 상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자국에서 그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 조선인 중에서는 원폭 피해자가 많았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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