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한국 상업 영화에 대한 실망감이 큰 요즘, 한국 영화의 희망을 기대해 볼 만한 영화가 개봉했다. 넓은 세계관과 큰 스케일로 찾아온 콘크리트 유니버스. 콘크리트 유니버스는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 첫 번째로 선보이는 영화<콘크리트 유토피아>는 2023년 8월 9일 개봉했으며 유쾌한 왕따의 2부를 담고 있다고 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피카레스크가 혼재된 한국 재난 영화는 어떻게 표현될지 상당히 궁금했고 시사회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고 해서 더욱 기대가 됐다. 엄태화 감독님의 동생인 엄태구 배우가 어디에서 등장할지도 미리 상상해 보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김선영 배우의 영화 <드림팰리스>와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
피카레스크 : 스페인어인 악당을 뜻하는 pícaro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도덕적 결함을 갖춘 악인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장르를 뜻한다.
선택받은 자들의 선택.
지진으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무너졌고 사람들의 시야에 보이는 건 오로지 서울의 황궁 아파트였다. 유일한 희망이 된 아파트에 주민을 비롯한 외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며 왠지 모르게 불편한 상황이 계속된다. 생각은 했지만, 입 밖으로 내밀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계기가 되었고 사람들의 결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다수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일명 선택받은 자들의 선택으로 많은 사람의 생사가 달리게 된 것이다. 그다음의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생사보다는 그동안의 과정이 이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준 것도 같다. 이 공간을 벗어나면 얼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외부인을 내쫓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주민 규칙이 시행되며 다수결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게 된 주민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에서 살아가게 된다.
아파트를 지키기 위한 노력.
주민 대표가 된 영탁은 아파트를 지켜야 한다는 목적 하나로 일을 진행하고 많은 사람이 그가 옳다고 생각하며 그를 따른다.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직책을 맡은 민성은 명화의 걱정에도 그저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영탁을 따른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각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분배로 그들만의 사회를 견고하게 구축해 간다.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외부인들과 더욱 분리되며 그들에 대한 혐오를 더욱 키워간다. 하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일부 입주민들은 죄책감과 연민을 느끼며 외부인들을 숨겨주곤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 영탁은 그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숨겨두었던 욕망과 광기를 드러내며 이 전체적인 시스템에 오류가 있음을 방증한다. 그 결과 내부의 불만과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 모든 것들은 혼란으로 번진다. 과연 그들은 혼란을 잠재우고 아파트를 지킬 수 있을까.
끝끝내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집이라는 공간이 언젠가부터 의미가 퇴색 돼버린 것 같다. 한정된 땅에서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어졌지만, 현재는 더 이상 주거 공간이 아닌 자산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을 반영하듯 재난 속의 잿빛 콘크리트 아파트처럼 현실도 결코 다를 바가 없는 재난과도 같은 현실을 영화에 담아낸다. 재난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조건은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난다. 유일하게 남은 콘크리트 아파트에 남은 유토피아에서 전부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콘크리트마저 남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결코 유토피아라고 볼 수 없는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생존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생존이라고 표현되는 그 거창한 대립은 처절한 인간성을 모두 무너뜨릴 만큼 참혹했다.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갈등은 모든 것이 당연하듯 이어져 내면의 붕괴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지켜보는 사람도, 미디어도, 없다면 사람의 도덕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기심을 집약해 놓은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누구도 검증할 수 없는 인간성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어떤 생각들은 동조한 것만으로도 동일한 의미가 있었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승리의 웃음을 내보인 순간, 인간성도, 인간다움도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사람들은 갈 길을 잃은 채 결국 생존을 바라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결국 저마다의 재앙을 맞이했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라고 다를까?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 혹은 그들이 외부인을 내쫓지 않았다면 다른 결말을 마주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내면을 채운다. 답을 낼 수 없지만 다양한 답을 줄 수 있는 어떤 선택지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만약 외부인을 내쫓지 않고 빈집을 내주거나 다른 공간의 사람들처럼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면 좀 다른 결말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면 동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황의 재난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극도의 이기심을 펼쳐내기 때문이다.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시작이 좋다.
흥행 공식에 걸맞은 영화의 형태가 아닌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다. 무엇보다 영화다운 영화였으며 연출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넓은 세계관을 잇는 콘크리트 유니버스 시리즈가 더욱 기대되게 만든다. 신파와 흔한 결말이 이어지지 않는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영화<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인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그 아늑함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붕괴는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한다. 재난이라는 상황만으로도 인간에게 있어서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는데, 인간이 인간에게 펼쳐내는 재난은 밀폐된 공간이 아님에도 상상 이상의 공포를 가져다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찾아오는 절망과 악랄하기 그지없는 인간 군상은 재난의 상황에서의 재앙과 다름없었다. 현실이 지옥과 같다는 말처럼 재난 상황에서의 사람들은 아파트의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하고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를 텁텁함에 숨이 막힌다.
https://brunch.co.kr/@mindirrle/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