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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Sep 25. 2023

조국에 얼기설기 붙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달리는 발걸음.

영화 <1947 보스톤> 시사회 리뷰


 세계 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선수들을 보면 가슴 한 편의 애국심이 차오르는 순간을 느끼곤 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서윤복 선수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한 이야기를 실화 바탕으로 만든 <1947 보스톤>이라는 영화이다. 광복 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담아내었다. 하정우 * 임시완 주연, 강제규 감독의 영화 <1947 보스톤>은 9월 27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영광의 상황에서 현실을 마주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는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의 대표로 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좋은 기록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기록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올림픽 신기록을 달성함과 동시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애국가가 아닌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남승룡 선수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기정 선수는 우승 기념으로 받은 월계수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렸던 탓에 더 이상 육상을 할 수 없게 된다.



광복이 찾아와도 바뀌지 않은 현실.

광복 이후, 조선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던 일본이 사라졌지만 하나된 독립정부를 수립하지 못했다. 그렇게 둘로 갈라진 조선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이념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아 있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위해 움직였고 세상은 또 바쁘게 돌아갔다. 1947년의 서울, 손기정은 선수 생활을 그만둔 후부터 마라톤보급회를 운영하고 남승룡은 마라톤 후계자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던 중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서윤복이 나타나며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출전에 도전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사실과 어떤 가치의 중요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과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조국의 힘.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선 대한민국의 기록이 필요한데, 손기정 선수의 기록이 일본에 귀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뀐 규정에 따라 국제대회에 기록을 남겨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대한민국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했지만 미국이 한국을 난민국으로 분류한 탓에 입국하는 데에도 엄청난 금액의 보증금과 현지 보증인까지 필요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는 일반 국민들의 성원이 모여 그들이 꿈의 무대에 닿을 수 있게 도왔다.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에 도착하지만 또 다른 위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란을 털어내고 우리의 이름을 새기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들이 생채기를 넘어서 과거를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건, 과거의 상처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퇴보의 길로라고 여겨지는 일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에 남은 기록들을 무시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끊임없이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노력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나아가는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승리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는 건 몹시 중요하다. 상황도, 시대도 다르지만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달라져도 보편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달렸던 그 간절함이 세계의 한가운데 새겨져 한국을 알렸고 애국가를 울렸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 변하지 않는 사실은 멀게 느껴져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에 대한 총평.

논란이 되었던 배우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어 4년 뒤인 지금에야 개봉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논란이 된 배우의 비중이 많아서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만 집중하여 별개의 인물처럼 여기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포츠 영화 + 역사 영화였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신파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게 잘 덜어내서 오히려 담백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인상 깊지만 실감 나는 경기 재연을 통해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극적인 부분을 잘 담아내어 만족스럽게 여겨졌다. 추석 연휴 시간이 된다면 부모님과 함께 가서 보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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