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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Oct 17. 2023

거짓의 언덕을 넘으면 진실된 내면에 닿을 수 있을까.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이지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비밀의 언덕>은 7월 12일 개봉했다.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초청작으로 여러 영화제에서도 많은 화제가 된 작품이다. 10대 소녀의 마음을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세밀하게 수줍은 마음뿐만 아니라 인정욕구를 잘 표현해 내어 흥미롭게 여겨진다. 가정을 벗어나 처음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학교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더욱 복잡한 내면을 표현한다. 내면적 갈등뿐만 아니라 외면적인 갈등 또한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도 같다.



비밀의 언덕.

초등학교 5학년인 명은은 신중하게 선물을 고른다. 조금 더 괜찮고 예쁜 겉포장을 위해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친구에게 선물을 주려는 걸까. 영화의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이유가 나온다. 학기 초 가정환경 조사 면담을 교실에서 하고 싶지 않아 담임 선생님에게 선물과 함께 편지를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지각으로 인해 그 마음이 닿지 않아서 교실에서 면담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 의해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된다. 명은의 비밀의 언덕은 아무도 모르는 새에 크기를 키워간다.



반장이라는 꿈.

반장은 반 학급을 통솔하고 선생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이다.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인 만큼 '권력'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명은은 꼭 반장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성공한다.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세우며 시작한 '비밀 편지'는 꽤 효과적이었고 좋은 영향을 가져왔다. 하지만 비밀 편지함에도 거짓말과 함께 혼재된 속사정이 존재했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쯤, 또래 친구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쌍둥이 자매 혜진이 전학을 오며 위기감을 느끼게 만든다.



가족은 물음표 투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의 가족은 감추고 싶은 것들의 연속이다.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고 평소의 가치관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환경 보호도 우리집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문제였다. 글쓰기를 잘해서 상을 받아와도, 반장이 됐을 때도 칭찬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더 큰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모범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인정 욕구에 의한 것인지, 진실된 모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을 거치며 진정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주하게 된다. 나중에 명은의 가족은 어떤 문장 기호로 마무리가 될지 궁금해졌다.



묻어두고 싶은 기억들

새로 전학 온 쌍둥이들은 항상 글쓰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그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명은은 그들에게 비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일반적인 순수한 글쓰기와는 다르게 솔직한 글은 어른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쌍둥이들은 계속해서 최우수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부를 공개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저마다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자신의 일반적인 글로는 입상할 수 없었던 명은이 솔직한 글을 써내려 가며 대상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된다. 그와 동시에 우리 가족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좋은 기분과는 다르게 그 글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묻어두게 된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담임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명은의 사정을 듣고 그 글이 묻힐 수 있도록 선의의 거짓말을 돕는다. 그 사실이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명은이 한 거짓말 중에서 가장 진실된 순간이었다.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형태.

명은은 가족을 물음표(?)로 생각했던 만큼이나 온점(.)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수상을 위해서는 공개해야 마땅하지만 그 글로 인해 우리의 가족이 타인에 의해 평가되는 일은 명은이 바라던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거짓으로 자신의 일부를 꾸며와 좋지 않은 결과를 몰고 오기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거짓은 상상 이상의 해피 엔딩을 가져온다. 내내 덮어 왔던 비밀의 언덕을 자신의 힘으로 넘어가면서 진실된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명은이 성장한 건 분명하다. 큰 변화는 없겠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를 명은의 다음이 기대가 됐다. 나도 명은이 처럼 모든 게 이해가 안되던 때가 있었는데, 여전히 물음표 투성이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알아 갈 것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사람은 늘 변하니까.



반장과 거짓말.

반장이라는 건 멋진 직함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에게는 참 부담스러운 직위였다. 왜 반장이 되었느냐고 물었던 그때의 부모님과 명은의 부모님의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지금과는 좀 다르겠지만 2000년대의 학교에서는 반장보다 반장 부모님이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운동회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학급의 간식을 챙겼고 소풍 때는 반장이 담임 선생님의 도시락을 챙겼었다. 그것이 당연할 때가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끼는 게 이해가 갔다. 어릴 때의 나는 부모님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며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로 거짓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냥 그 상황을 넘어간 게 신기할 정도다. 아마 비밀의 언덕에서의 명은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평소 무뚝뚝하고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면 인정 욕구가 솟아오르기 때문에 너무 공감이 갔다. 거짓말이든 인정 욕구이든 악의적인 형태라기보다는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에 더 가까웠다. 영화로 표현된 거짓말이 지난 시절의 나를 떠오르게 만들어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건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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