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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Oct 19. 2023

나 조차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매몰된 감정을 마주하며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리뷰


곽은미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10월 18일 개봉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배우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곽은미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이설 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로 탈북민이라는 소수자의 삶을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조명하여 한국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그 사회의 모습과 같아질 수 있을까?



정착을 위한 노력

탈북자 한영은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관광 통역 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중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가이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모든 것이 서툴고 쉽지 않은 처음을 겪으며 쉽지 않은 한국 생활을 이어간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바로 돈을 벌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선배 가이드들을 따라다니며 호응을 유도하는 안내 기술을 어깨너머로 흘낏 훔쳐보고 배운다. 들통나 창피를 당하기도 하지만 능숙한 관광 가이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정미의 응원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한영은 동생 인혁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안정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거듭된 절망.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 정부가 보복성 조치로 '한한령'을 내리며 중국 특수를 누리던 관광업계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한영이 일하던 여행사도 사정이 좋지 않아 임시 휴업을 하게 되고 한영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치열하게 일한다. 하지만 살기 위한 그의 노력과 함께 점점 선을 넘는 행동들은 한영으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비치게 한다. 가장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이 그것에 제동을 걸며 한영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원래대로의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다시 한번 더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한영을 다시 일으킨다.



잃어버린 꿈.

한영은 꿈이 분명 있지만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여유가 여의치 않았다.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사회생활을 통해 잠시 접어 두었던 꿈을 펼쳐내려 한다. 하지만 그 소박한 희망은 번번이 가로막히고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마저도 앗아갔다. 분명히 힘겹지만 나아질 것이라 믿는 한영의 생각은 점차 희박해진다. 한영뿐만 아니라 주변 탈북민들 또한 그러했기 때문에 또 다른 희망을 위해 한국을 벗어나려 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기에 살아갈 수 있었던 한영은 정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은 옆자리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분명 자신의 나라이지만 모순되게도 외부인의 위치에 놓여 있었던 한영은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희미해져 가는 '살아갈 이유'를 점차 지워가며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녀의 발걸음을 그저 뒤따라갈 뿐이었다.



탈북민의 삶이란.

영화는 탈북민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고단함에 집중하지 않는다. 한영의 삶을 통해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드러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함을 드러낸다. 한국인들과 외모가 별 차이 없지만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린다. 어쩌면 외국인 보다 더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배타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부분과 탈북민에 대한 삶을 담은 부분을 조금 더 부각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장면들로 영화의 주제를 다시 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쉬웠다. 분명 탈북민의 삶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의 사정이 그저 영화에 담긴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더 나아가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이다.



믿을 수 없는 사람.

철저하게 중국인의 시선에 맞춰 역사를 왜곡하는 방식이나 화장품 강매를 하는 장면은 실적을 내기 위한 한영의 그릇된 행동이다. 탈북민 선배 가이드의 좋지 않은 행동을 따라 하거나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며 겪는 일들은 결국 자신에게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한영의 주변은 가장 가까울수록 믿을 수 없는 존재로 가득해진다. 친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영은 동생 인혁을 찾으려 애쓰지만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등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에 살았던 리샤오는 돈을 벌기 위해 여행을 빙자로 한국에 체류하려 한다. 결국, 인혁은 한국에 무사히 정착하지 못해서 고향에 돌아가려다 잡히고 리샤오는 종적을 감춰 세 명이 함께 꿈꿨던 한국에서의 삶은 산산 조각나버린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친구 정미의 이민 소식을 듣게 되며 한영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매몰된다. 이처럼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여러 탈북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탈출을 감행하게 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돈을 벌다 보면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잔잔한 절망을 부유한다. 한영이 끊임없이 바랐던 희망 하나마저도 앗아가는 모습이 절망스러웠는데,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채 끝나버린 결말은 정해지지 않아 더욱 묘했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정말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며 말투와 행동이 점차 바뀌어가는 한영의 모습처럼 뭔가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한영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여행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모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타인에 모순적이게도 여행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서울 도심 관광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친구와 함께 했던 관광에서 울려 퍼졌던 노래가 더욱 경쾌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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