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래퍼> 리뷰
샬롯 리건 감독의 영화 <스크래퍼>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조지의 감정과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한 연출을 통해 조지의 성장을 그려낸다. 영화는 조지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떤 사연으로 혼자 살아가면서도 슬픔을 능숙하게 견디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혼자 자랄 수 있는 아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장 위에 미안하지만 난 혼자 자랄 수 있어라는 문장이 뒤덮인다. 그리곤 혼자서 집안일도 거뜬히 해내며 어른 없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조지가 엄마를 떠나보낸 후 시설에 보내지는 게 두려워 삼촌과 함께 산다는 거짓말을 꾸며내 홀로 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12살인 조지가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한 일은 방과 후 자전거를 훔쳐 파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느새 조지의 세상은 거짓말로 산더미가 되어 버렸고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생전 보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아빠라고 소개한다.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이 남자가 당황스럽기만 한 조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보통의 삶과 다른 어른이와 어린이의 공존
그동안 자신과 엄마를 찾아오지 않은 일명 자신의 '아빠' 제이슨은 그저 낯선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제이슨을 몰아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쓰지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던 상대였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해 그와 원치 않은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어른 없이 혼자 살고 있다는 약점은 어떤 방법으로도 감출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한편, 제이슨은 아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숙했고 별 계획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책임' 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였던 것인지 두 사람의 거리는 점차 가까워진다.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의 공존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이다움.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스스로를 돌보는 조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이었다. 아이로서 누려야 할 돌봄을 누리지 못하고 '어른의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 어른의 부재는 슬픔마저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형태가 된다. 그렇게 조지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는 슬픔과 상실감을 애써 감추려 주변에 날을 세운다. 하지만 점차 한계가 오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던 아빠와의 관계는 점차 함께 하며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조금씩 배워간다. 물론 아빠인 제이슨은 부족하고 서툴지만 엄마가 떠난 후 아무도 보호해주지 못했던 조지에게 처음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었다.
아빠의 존재에 대한 의문
여러 힘든 순간에도 찾아오지 않았던 제이슨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딸 조지를 찾아온다. 금방 떠날 생각이었던 것만큼 그에게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조지에게 있어서 더욱 불안하게 여겨졌다. 상당히 짧은 시간 속에서 아빠와의 공존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처럼 여겨졌다. 물론 감정의 교류는 있었지만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전개였다.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던 제이슨에게 조지를 맡기기엔 너무 불안했다. 부디 부녀의 삶이 안정되고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