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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Dec 08. 2023

기억을 눌러 담아도 불쑥 튀어나오는 추억의 이름.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리뷰


김민주 감독의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는 12월 7일에 개봉했다. 여러 영화제에 초청 및 수상을 이어가며 훌륭한 영화임을 입증받은 바 있다. 영화는 서울에서 부산 영도로 다시 돌아온 혜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연히 엄마의 편지를 발견하며 생기는 일을 다뤘다. 실제 모녀와 자매 사이 같이 느껴지는 영화로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 깊다. 감독의 실제 가족사를 이야기에 녹여내어 더욱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 떠났던 여자, 떠나가고 싶은 여자, 떠난 곳이 그리운 여자.

정말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혜영. 작가를 꿈꿨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반면, 항상 떠나고 싶었지만 장녀라는 책임감 때문에 집을 떠날 수 없었던 첫째 혜진은 혜영이 탐탁지 않다.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의 자유를 꿈꾸는 혜주까지 정말 다른 모습의 세 자매는 오랜만에 만났다. 하지만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서 그들은 충격을 받게 되고 그에 따른 갈등도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다. 서로를 향해 숨겨두었던 속마음과 이야기는 생채기를 마구 낸다. 그러던 중 교토에서 온 편지가 그들을 완전히 바꿔놓게 된다. 과연 그 편지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 걸까.



엄마가 물건을 쌓아두는 이유.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가 엄마가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 속에서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어로 쓰여있는 편지였으며 수신자도, 발신자도 알 수 없었다. 물은 적이 없어 대답해주지 않았던 엄마의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 어릴 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을 떠났고 영도에 자리를 잡은 뒤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교토에서 온 편지만이 유일한 일본에 대한 기억이고 엄마의 흔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편지마저 어느새 끊기게 되면서 기억의 뒤편에 잠시 올려둔 것이었다. 기억은 만질 수 없어서 만질 수 없는 것을 채워 넣는 엄마의 행동이 뭉클하게 만들었다. 혜영의 시선에서는 쓸데없는 물건을 쌓아두고 주변의 미관을 해친다고 생각했지만 엄마에게는 그 물건은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듯 엄마 또한 그 물건을 채우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기억하고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그 상흔에 대해.

사람들이 의외로 가장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 관계가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일 것이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가장 많이 알면서도 알 수 없는 이 관계는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어서 더욱 어렵다. 각자 만의 고충을 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자신의 사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생채기를 내고 미안해하면서도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생채기가 나는 부분을 잘 표현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끔따끔했다. 특히 둘째와 엄마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는데, 상황과 처지는 전혀 달랐지만 둘째와 엄마의 모습이 나와 엄마가 참 많이 겹쳐 보여서 인지 계속해서 눈길이 갔다. 큰 교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고 또 그로 인해 싸우게 된다는 점이 그랬다.



갈등과 매듭.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매들이 겪고 있는 갈등의 요소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혜영을 중심으로 한 것 같으면서도 자매와 엄마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다루려고 하니 더욱 부족한 면이 부각되고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웃음으로 가득한 결말로 끝난다고 해서 그게 행복한 결말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걸 관객들은 알고 있다. 이미 분위기를 심각하게 끌고 갔고 몰입을 최대로 하게 만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갈등이 발생하는 구간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어머니는 어떻게 됐는지, 둘째는 회피했던 문제를 잘 해결했는지, 큰 언니는 그 사람과 어떻게 지냈고 부산을 잠시라도 떠나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영화는 그 찰나에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영화는 현실적 이게도 당연하게 부탁하고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큰언니가 계속 무겁게 남아 여운을 남긴다. 끝까지 차오른 갈등과 매듭짓지 못한 결말의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럼에는 영화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복잡함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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