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리뷰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는 2024년 3월 6일 개봉 예정인 영화이다. 제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제7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더욱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해당 영화는 2024 롯데시네마에서 기획된 아카데미 기획전 프리미어 상영을 통해 관람한 영화이다.
나영과 해성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다. 어느 날, 나영이 이민을 가게 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고 멀어졌다. 그렇게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정확히 12년 후 만나게 된다. 나영이 sns를 통해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활동 시간은 다르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 시차를 극복해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러온 한계는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각자의 일상에서 만난 또 다른 인연은 두 사람을 또 다른 길로로 나서게 만든다. 또다시 12년, 해성이 뉴욕을 찾아 나영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인연의 끝은 어떻게 장식될까.
그들의 인연의 감정의 끝은 미련 혹은 후회일까. 알 수 없는 감정이 흐르고 12년이라는 세월만큼 멀어졌지만 여전히 응어리처럼 남아있는 감정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사랑이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케 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 힘은 정말 강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이어져서는 안 될 이야기이다. 서로의 자리가 있고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이 드러나서도 안되며 이끌려서도 안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해성과의 만남이었다. 매듭지어져야 할 일은 맞으나 이루어져서는 안 될 만남이 성사됐다는 그 미묘함이 불쾌감으로 바뀌는 것은 그들의 눈빛에 의해서였다. 뉴욕에 찾아온 해성과 만나는 나영의 미묘한 감정을 그의 남편인 아서도 느꼈을 때, 과연 무슨 감정이었을까 라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제발 멈춰주길 바랐다.
과거의 나영과 지금의 노라는 다른 사람이지만 또 같은 사람이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달라진 자신을 마주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도, 공간도 전혀 다른 공간에 놓였고 그곳에서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해진 그런 시기에 만난 해성은 환상의 대상이었다. 많은 것이 달랐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날 수 있는 그런 감정은 환상에서 피어난 것에 불과한 걸까. 그렇다면 설명이 된다. 현실의 간극으로 인해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환상은 깨졌고 그다음에 찾아온 현실은 무척이나 냉혹했다. 가벼운 감정은 아니었으나 타이밍을 놓친 인연의 끈은 그곳, 그 시간에 멈춰 사랑의 거리를 더욱 벌려 놓았다. 그리고 각기 다른 곳에서 시작된 인연은 서로의 종착지가 되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 속 한국은 여전히 그 시절에 멈춰있는 것 같다. 영화 속의 '인연'의 소재가 그리 '인연'다운 면모를 펼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그녀의 입으로 나오는 말에 경악한다. 그녀가 한국 사람이라 지칭했던 그 의미야 말로 과거의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진짜 '한국인'의 모습도 아니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나라에서 펼쳐지는 한국인의 모습이 소개될 생각을 하면 좀 당황스럽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고정관념을 굳히는 것 같아서 좀 많이 아쉬웠다. 인연보다 이민자의 삶으로서 정착하고 나 자신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면 훨씬 더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첫사랑'과 '인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 사이에 유영하는 감정을 모두 붙잡는 섬세한 시선이 인상 깊은 영화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흐르는 시간을 표현한 듯한 카메라의 흐름은 마치 삶처럼 여겨진다. 선택하기도 벅찰 정도로 지나가는 일들과 현실에 부딪히는 그런 일상들이 그렇게 지나간다. 하나의 관계에 집중하기엔 이 크고 넓은 삶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혹시 모를 인연 앞에 놓인 한없이 얕은 자기 합리화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이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겠지만 현재를 위해서 타인의 마음에 상처 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나쳐갔을지 모를 과거의 인연을 붙잡고 현재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인연의 힘에 대해 설명한다. 자칫하면 치정극으로 보일지도 모를 이야기의 흐름을 꼭 붙잡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성숙한 어른들의 자세라는 것은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선을 넘지 않으며 묵묵히 상대를 위해 '선택'하는 일이다. 하지만 12년이라는 시간을 채울 이야기가 부족했고, 그동안 요약하듯 지나간 나영의 시간과 해성의 시간을 이해할 수 없어 감정이 다소 미약하게 다가온다. '첫사랑'이라는 이유 만으로 인물들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변화와 미묘한 갈등을 다루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을 여러 가정법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가정법으로 인해 몰입하기 힘들었으며 영화에 공감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마치 준비된 것 같은 상황과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감정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12년의 서사와 하나의 기억이 불러오는 인연의 힘이 왜인지 희미했다. 그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관객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형용할 수 없는 어려움은 찝찝함으로 이어진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에 의해서 어려워진다. 여기저기 뿌려둔 가정법의 떡밥을 후반부에서 잘 살렸다면 불필요한 요소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서술은 영화에 빠져들 수 없게, 그리고 겉돌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영의 시간'과 '해성의 시간'이 더 궁금해졌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지만 어떤 것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공감하며 따라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영화를 관람하며 어떠한 애틋함이나 사랑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연기력 외에도 영화의 전반적인 연출과 편집이 조화롭지 못하며, 이로 인해 영화가 어색하다. 영화도 산만했는데, 관람한 영화관도 산만해서 실망 가득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