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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r 22. 2024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잔혹한 속임수.

영화 <가스등> 리뷰


조지 큐커 감독의 영화 <가스등>은 1944년에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패트릭 해밀턴의 동명 희곡이 영화의 원작이며 2019년 국립 영화등기부에 등재되기도 했다. 제1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제2회 골든글로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가스라이팅의 어원은 연극과 이를 각색한 두 편의 영화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작품은 가스라이팅을 예술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꿈꾸는 두 사람.


밤이 되고 불이 환하게 밝혀지는 도시의 풍경. 이곳은 쏜튼 광장이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인 엘리스 헬퀴스트가 살해되었으나 범인을 잡지 못한 상태였고 미제로 남았다. 조카 폴라가 그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지만 이모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게 되면서 그 집을 떠나게 된다. 성악 수업을 계속 받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됐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으면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그런 남자 그레고리 안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곳곳에 남아있는 이모의 흔적과 또렷한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레고리와 함께 한다면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편지와 왠지 모르게 이상한 상황은 그녀를 궁지에 몰기 시작한다.



사랑을 가장한 세뇌의 폭력.


가스라이팅은 가스등 효과라고도 말하는데, 뛰어난 설득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식적인 심리학 용어는 아니라고 한다. 이 영화는 가스라이팅의 과정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가스라이팅을 설명한다. 와이프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남편이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로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과정을 그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온 집에서 발견한 수상한 편지와 의심은 오히려 그녀에게 약점이 된다. 굳이 이모를 찾으려는 노력 때문에 우리의 사이가 흐트러진다는 이야기를 건네며 언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묘하게 말을 섞어가며 하고 싶은 말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리사는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 하녀는 건방진 사람을 고용하여 주눅 들게 끔 만들었다. 주변과 교류를 할 수 없게 막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소리를 조작하여 현실감을 잃도록 만들고 사고하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며 완전히 그녀가 무력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바깥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여러 상황을 이용하여 이상하다고 여겨지게끔 만들어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환자처럼 모욕을 주기도 했다.



가스라이팅의 진행 과정.


영화는 폴라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중반부터 시작되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폴라의 감정 변화와 고통을 몰입감 있게 표현했다. 가스라이팅의 과정에 따라 폴라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고 가스라이팅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표현하고 있어서 '같이'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가스라이팅이 진행되면서 고립과 무력감이 극대화되고 그 과정 속에서 공포를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초반부터 숨 막히는 과정을 이어가는 모습이 정말 괴로웠고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진지하게 지켜보며 후반부의 통쾌함을 기대했다. 가스라이팅을 몰입감 있게 잘 표현해 내서 정말 화나고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의심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이어졌을 수많은 일들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상상 이상의 통쾌함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분리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수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됐다. 영화는 가스라이팅의 과정을 그리다보니 '다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폴라가 그 자신의 힘으로 다음을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열린 결말을 암시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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