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May 03. 2024

마음을 혹독한 겨울에서 따뜻한 봄으로 옮겨 심는 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겨울나기>


한 사람으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준영 감독의 영화 <겨울나기>를 봤다. 코리안시네마부문인 <겨울나기>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인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영화로 실제 상영작이 공개되고 나서 기대되어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 중 하나였다. 뭔가를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으며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겨울나기’라는 제목을 통해 등장인물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영화이다.



연에게 있어서 겨울은 극복이 아닌 견뎌내야만 하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는 마음껏 애정을 담을 수 있지만 그만큼 미워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가족관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그 생각은 연의 결혼관 마저 뒤집어 버린다. 가족에게도, 애인에게도 부담스럽다는 말을 듣게 되며 유독 연에게 혹독했던 겨울이 더욱 싸늘해진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겨울이 유독 연에게 혹독했던 것이 아니라 연이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의 ‘겨울’을 둘러보지 못했던 것 같다. 모두가 이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며 ’ 겨울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았다면 겨울나기가 훨씬 수월 했을지도 모른다.



나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애매한 ‘나’를 생각하면 우울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한다. 주변의 속도에 맞춰나가지 못한다는 생각과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이 부딪혀 상상이상의 혼란을 불러온다. 그래서인지 어느샌가부터 나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을 부각하곤 한다. 하지만 싫은 모습이든 좋은 모습이든 모두 나의 일부나 마찬가지이다. <겨울나기>는 자기혐오를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따뜻한 영화이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당신에게 다가온 겨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중점이 되는 ’ 엄마의 치매‘는 보는 내내 마음을 울멍이게 만들었다. 주변인이나 당사자에게 있어서 더욱 가혹했던 치매라는 병은 어떤 것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어서 더욱 힘겹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미워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눈물 날 만큼 가여워지는 순간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에 엄마가 선택을 했듯이 현재의 연이 선택을 해야 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지난 관계를 재정비하고 오해를 풀며 다시 엄마와 재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은 아니었다. 아래의 GV 관객과의 대화를 참고해 보면 이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떠나가는 세대들과 나아가는 세대라는 어떤 순환은 어떤 것보다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만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좋은 작별’ 앞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한국 사회의 ‘현재‘는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가 충돌하며 다양한 갈등의 양상으로 펼쳐진다.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우리 사회의 자잘한 충돌을 담아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격차 후 거리를 좁혀가는 모습에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단언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체되어 있던 연은 불꽃을 기점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두려움 때문에 건네지 못했던 말들과 어떤 감정들이 희미해지던 중 연의 시간이 명확해지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어떤 위치에 서있을지 몰라 용기를 내지 못했고 그래서 ‘부담’스럽게 굴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마침내 용기 내어 말하고 진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진정한 겨울나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GV 관객과의 대화

장준영 감독, 장선 배우
양나영 배우, 정미형 배우


겨울나기 gv


영화 <겨울나기>의 감독과 배우의 관객과의 대화 일부를 실어보았다. 사람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잘 드러나는 만큼, 인물들의 감정 또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감독은 시나리오로, 배우는 등장인물로 잘 녹아들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겨울나기>라는 팀이 진심으로 하나고 되고 이야기에 녹아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질문 :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이제 마중을 가는데, 그때 혹시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시는지 궁금합니다.


(장 선 배우 분의 놀랍다는 반응!)


감독 : 엄마보다는 수 여자친구를 맞이한다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장선 배우 : 그는 그 장면 촬영하실 때나 보셨을 때 어떻게 일단 너무 감사드리고 사실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관점이었어요. 저희는 사실 알고 있으니까 그랬을 것 같은데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목이 겨울나기잖아요. 그래서 사실 연 같은 경우는 계속 뭔가 가슴에 뭔가 꽉 막혀 있는데 그거를 자기도 어떻게 할지 모르고 뭔가 답답함은 쌓여 있고 나만 짐을 안고 있는 것 같고, 그러다가 희 또한 엄마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걸 감추고 있었구나. 정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정말 힘들었겠구나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정을 그렇게 아낄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고, 내가 가장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각자 모두에게 각자의 짐이 있었고 각자의 힘듦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천천히 배우게 되고 그리고 진짜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이에 숨기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그 수를 저희 집에 초대하고 이제는 진짜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습니다. 실제 저 장면을 촬영할 때는 막상 수에 대한 마음보다는 수를 맞이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엄마랑 그렇게 부대끼며 있던 집에서 이제 내가 다른 손님을 기다리고 있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양성을 품은 전주, 경계를 넘어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