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경 이야기> 리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3년 영화 <동경 이야기>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에 선정되었다. 70년 전에 만든 영화이지만 전혀 빛바래지지 않은 고전 명작이다. 감독의 작품 중 유독 씁쓸하게 다가오는 '가족'과의 소통을 다뤘다. 2시간 16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이루어진 대화가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사이에서 복잡하게 여겨지는 가족과의 관계 속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에 살던 노부부는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한다. 하지만 자식 내외는 부모님을 반갑게 맞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워한다. 그뿐만인가 분주한 일상을 핑계로 소홀히 대하며 불편한 심정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온천에 보내는 등 어떤 변명을 해도 이들의 행동은 효도보다는 방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별말을 하지 않고 노부부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노부부를 극진히 모시는 건 오로지 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들의 아내이자 며느리 노리코뿐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고향을 돌아갈 시간이 된 그때, 어머니가 쓰러지게 된다.
자식이 아닌 며느리가 부모님을 모시는 장면은 지극히 불편해지는 구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 사람과 사람으로서 대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친절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으로서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어떤 강박적인 의무감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또, 노리코에게 주어지지 않은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자식이 남보다 못하다는 걸 보여준 것 같기도 했다. 시부모님에게 최선을 다하고 남편을 기억하는 그녀에게 시부모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아버지에게 솔직한 속내를 건네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 남은 딸이 결혼하게 되면 혼자 남을 아버지에게 있어서 좋은 결말은 아니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유일하게 잘 대해준 존재에 대한 친절일까.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이후, 전쟁의 결과물을 외면하고 질서 박힌 일본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자본주의는 사람들 자체를 수단으로써의 목적으로 변화시켰다. 전쟁으로 잃어버린 것들은 비단 누군가의 신뢰뿐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나 비이상적인 감정이 그들을 덮쳤다. 공허함으로 가득해져 버린 이 사회에 빼곡히 채워져야 할 결여는 어디에서 채울 수 있을까. 감정을 숨기고 있는 만큼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괜찮은 듯 말해보지만, 그 허무함을 지울 수 없었다. 외면하는 그런 모습들을 투영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배가한다.
분명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쌍방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경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길지만 짧게 느껴졌다. 그 넓은 공간과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둘 곳 없는 그 비정한 도시의 일면을 보여준다. 한편, 바깥의 공간에서 바라본 영화의 모습엔 '당연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인지하지 못한 '당연함'은 자락에서 마주할 수 있게 만든다. 영원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것처럼 당연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사람이 그토록 많은 풍경에서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동경은 삭막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감싸고 있었다.
노인들은 한때 우리가 동경하던 어른들이었지만 지금은 쇠약해진 모습으로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겉으로의 공경과는 다르게 밀려오는 어떤 무례함은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그 자체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만든다. 일정한 가족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못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면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분명 잘 자라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형식적인 '효'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인의 삶은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무엇을 위해 나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나아가는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는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 사회의 시간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노인들의 시선을 비춘다. 어떤 의견도, 시선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 자체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 수많은 여백 속에 담긴 수많은 말에는 허무함이 팽배하게 깔아 둔다. 가족의 풍경에서 마주할 수 있는 회의감을 느낄 새도 없는 것은 거침없이 지나가는 우리 사회 속의 변화를 인식해서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지금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동경 이야기>의 인물과는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에 사랑의 가치를 다시 찾아와야 할 때이다.
영화는 인생을 반영한다. 이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해야 할 '사랑'보다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돈'이 우선시되고 있다. 기본적인 것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을 얻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 지난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들과 함께 쌓아온 감정도 영원히 마주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함께 쌓아온 감정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므로, 후회하지 전에 현재의 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극 중의 자식들은 부모를 등한시하고 죽고 나서도 별다른 감정 없이 행동한다. 지난 삶의 어떤 모습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자신이 그러한 현재를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의 희생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감정으로 바뀔 때, 바라보면 <동경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영화를 다시 볼 때, 현재의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