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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y 13. 2024

파리와 텍사스라는 이질적인 공간의 허상.

영화 <파리, 텍사스> 리뷰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는 1987년에 공개된 로드 무비이다. 제3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의 텍사스 주를 배경으로 하여 파리와 텍사스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잘 활용한 영화이다. 파리라는 환상의 공간과 텍사스라는 현실적인 공간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2점과 4점을 동시에 주고 싶었던 영화로 황량한 풍경 속 걸어가는 한 사람의 기나긴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멕시코와 미국 접경 지역 부근인 텍사스 주 파리의 어떤 마을에 한 남자가 걸어온다. 탈진한 듯 보이는 그는 도착하자마자 쓰러지고 그의 소지품에서 월트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LA에 살던 월트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 그렇게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라진 트래비스는 기억을 잃은 것도 모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월터는 형의 시간을 기다려주기로 하고 4년 동안 대신 길러준 아들 헌터와 재회할 수 있게 돕는다. 동생 내외와 생활하면서 4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들 헌터와 다시 재회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앤에게서 제인이 아들의 부양비를 매달 입금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이 휴스턴의 트라이 빈 뱅크은행이라는 것을 듣고 아들 헌터와 기다리기로 한다.



헌터가 자신의 엄마를 발견하고, 트래비스는 헌터와 함께 제인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탄 빨간 차를 따라간다. 어떤 건물에 서게 되는데 그곳에서 제인이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제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손님으로 가장해야 했고 그 방에 들어서서 그녀를 기다린다. 손님은 여자를 볼 수 있고 여자는 손님을 볼 수 없는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제인을 만나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손님의 사연을 들어주겠다는 제인의 모습을 본 트래비스는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고 다음 날, 다시 제인을 찾아가 지난 4년 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독백으로 쏟아내는 과거의 이야기는 제인으로 하여금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끝낸 트래비스는 제인과 아들의 재회를 돕고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파리, 텍사스라는 공간은 미국 텍사스에 존재하는 파리라는 장소이다. 그곳은 트래비스의 부모가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곳이자 트래비스가 태어난 장소다. 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잊듯 새로이 시작한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남자의 발걸음은 먼 곳을 응시하며 어디론가 계속해서 걸으려 한다. 자신의 지난 과거를 잊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속죄의 여정을 거쳐 진정한 반성의 길로를 걷기 위함일까. 이미 용서를 구할 대상은 눈앞에 보이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그저 목적지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만 한다. 사과의 대상이 원치 않으면 '사과'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제인을 다시 만나게 된 트래비스는 30분의 시간 동안 닿지 않을지도 모를 자기반성과 사과의 말을 건넨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고 아니어야만 한다.



소재의 불편함을 딛고 전화방이라는 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을 볼 수 없고,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을 볼 수 없는 환경을 택함으로써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타인의 환상 혹은 망상이라 취급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상대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어떤 방법을 써도 만날 수 없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을 구성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달갑지는 않았다. 그녀를 다시 찾아서 지난 과거를 다시 꺼내고 사과의 말을 하는 것 자체에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를 들으며 화가 났지만 아들을 만나게 해 주려는 마음이 또 이해가 되어 혼란스러웠다.


(처음 트래비스와 제인을 봤을 때, 이야기 안 했으면 솔직히 아버지랑 딸인 줄..)



제인과 트래비스의 아들인 헌터는 8살을 앞둔 7살의 소년이다. 4년 전 사라진 부모님에 의해 월터와 앤이 보살펴주었으며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자랐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친아빠인 트래비스가 눈앞에 나타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간극만큼이나 멀어진 친아빠를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트래비스는 어느 날부터 하교하는 헌터를 기다리고, 거부를 당하면서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지나 아들과 가까워지고 아들 내외는 그게 좋은 듯하면서도 헌터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조바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트래비스는 제인을 찾아 나서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헌터는 트래비스를 따라간다. 그 여정에서 엄마를 만나 헌터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두 어른들에게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무엇보다 헌터가 이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영화의 제목이 파리, 텍사스이며, 공간의 배경이 황량한 사막인 이유는 파리 텍사스는 파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상 이상의 것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그저 현실의 공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이 영화에는 2점과 4점을 동시에 주고 싶었다. 2점을 주고 싶은 과거에 끊임없이 내뱉는 자책의 연민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고, 4점을 주고 싶은 이유는 거부당할 것을 알면서도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하고, 지난 과거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긴 여정을 통해 보여주어서였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고, 평가도 힘든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4년의 공백을 끝까지 채울 수 없으면서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건 그녀를 찾으며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사과를 건네며 더 이상 자신의 환상에 그녀를 가두지 않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찾아간 것이다. 사랑으로 가장한 집착 그리고 폭력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과거엔 이기심으로 인해 떠났다면 이제는 지키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닐까. 평생이 지나도 상처로 가득한 그 기억이 자신으로 인해 모든 것이 깨졌음을 알기 때문에 떠난다. 상처로 흉이 진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처가 될 수 있고 다시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떠난 것이다. 다시 만나지 않아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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