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키루> 리뷰
지금 살아가는 것에 급급하게 되는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해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특별한 삶을 살 줄 알았던 과거와는 다르게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게 당연해졌다. 그건 아마 어른이 돼서 평범하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의 삶이 그리고 나의 존재가 유독 작아 보이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어릴 때의 난 이런 꿈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보다 변화를 즐거워했었다는 것을 떠올릴 때 과거와 현재가 다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났다. 어떤 인생이든 완성될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키루>,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무원 와타나베는 매일 아무런 표정 없이 정해진 서류에 도장을 찍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3개월이라는 기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자신의 병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서류를 잡아들며 본격적으로 열정을 쏟게 된다. 어쩌면 삶의 이유를 찾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할 그의 행동은 불과 며칠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과연 자신의 이름을 남길 그 프로젝트를 성공할 수 있을까.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를 하는 게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처럼 묻어가고 존재감이 없는 편이 훨씬 낫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누군가 책임질 여지를 전혀 만들지 않는 것이 이곳에서의 암묵적인 룰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시민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민을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타 부서에 떠넘기거나 정해진 일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모습을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면서 자신의 삶에 변화를 꾀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가 이전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사는 열정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삶 그리고 정의되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 원하지 않게 되면 이용가치가 떨어지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런 결론으로 삶이 마무리된다면 더더욱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 한다. 나 자신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삶의 가치를 내가 찾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평생을 아들을 위해 살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그 장면을 드러내기 위해 영화에서는 장례식장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게 만들었다. 사후에 일어나는 일을 드러냄으로써 그가 살아온 일생을 되짚어 보고, 행동한다는 것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쉽게 성취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해내게 되어도, 왜 쉽게 인정해주지 않는 걸까. 이 영화는 관료주의 사회의 폐단과 집단이 개인의 영광을 뺏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집단의 배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자신이 이뤄낸 성과가 한순간에 타인의 공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일말의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건 그 과정을 알아봐 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희망이 존재할 수 있고 삶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특별한 사건이 있다기보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3개월이라는 기간을 부여받기 전엔 ‘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살게’된 것은 3개월이라는 기간을 부여받고 방황하면서 깨닫게 된 어떤 사실이었다. 삶은 죽음으로서 완성되고,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완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눈앞의 죽음이 다가오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곤 한다. 미래를 고려할 새도 없이 현재의 우리는 고려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가는 것에 급급하고, 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저 순응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이 절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찾고 삶을 채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늦지 않게 또, 후회하지 않게 현재를 살아가자고 영화를 통해 말한다.
인생은 짧은 것 사랑하라 소녀여.
붉은 입술이 바래기 전에
뜨거운 피가 식기 전에
내일의 해가 뜨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