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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y 21. 2024

사라진 여자, 숨겨진 반전 속 비밀.

영화 <그녀가 죽었다> 리뷰


어떤 상황들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 속, 나의 결백을 위해서는 나의 명백한 잘못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영화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할 것이다. 2024년 5월 15일 개봉한 김세휘 감독의 <그녀가 죽었다>는 변요한 신혜선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그 남자, 그 여자.


이 남자는 공인중개사 구정태로 타인을 관찰하는 취미를 가졌다. 고객이 맡긴 열쇠로 집에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취미를 가졌다. 집에서 없어져도 모를 '물건'을 가져가 기념하지만 별 죄책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늘 그렇듯 편의점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던 구정태의 눈에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채식 식단 사진을 포스팅하는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바로 인플루언서 한소라, 그녀에게 큰 흥미를 느끼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일상을 훔쳐보다 못해 집까지 드나들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몰래 들어온 것이 발각될까 두려웠던 구정태는 그 상황을 뒤로한 채, 도망 나온다. 그리고 다시 왔을 때, 죽었던 그녀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죽은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녀가 죽었다는 것도, 자신이 타인의 집을 들락거리는 것도 밝힐 수 없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렇게 그녀의 죽음을 마주했지만 그녀의 죽음도 자신의 결백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자신의 비밀을 아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하게 된다. 한소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을 드나든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조사가 진행되며 자연스레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그렇게 구정태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사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한소라의 SNS와 주변을 탐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SNS가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범죄의 도구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SNS가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를 통해 타인의 삶을 쉽게 엿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에는 굉장히 좁은 의미로 작용했지만 현재는 일상과도 굉장히 밀접한 형태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것을 강조하듯 영화 속에서는 SNS를 범죄의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정보가 많은 만큼 타인의 정보 또한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sns는 그 장점만큼이나 단점이 극명한 플랫폼으로서 작용한다. 그 사람의 일상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만큼이나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둔감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친근함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지만 불특정다수로 인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대비된다. 그 과정은 현대사회에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의 성과는 '쉽게' 부정하고 '나락'보내는 모습이 꽤나 익숙한 건 왜일까.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악인들.


악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피카레스크 장르를 이용하여 전체적인 느낌을 '불쾌함'으로 가득한 것 자체가 유쾌하지는 않다. 그 불쾌함을 걷어내다 보면 그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왜?'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그저 변명처럼 느껴진다. 남을 훔쳐보는 '관찰자시점'으로 우위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던 구정태가 '관찰대상'이 되며 느끼는 압박감은 영화를 너머 크게 다가온다.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며 급박하게 변하는 스릴러는 구정태를 협박하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용기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그 점을 강조하며 결코 미화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집에 함부로 들락거리는 일이 호의를 베푼다는 합리화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밝혀진 스토킹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으로 벌인 그 수많은 범죄 또한 미화될 수 없다.



영화 속 sns, 사회 속 sns.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는 sns가 일반화되어 있다. 안 하는 사람이 드물정도인만큼 현대인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sns의 양면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일상에 자리 잡은 만큼 간편하지만 그만큼 범죄에 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대인들이 sns를 통해 보여주는 삶과 실제 삶의 괴리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군중 심리에 따라 여론이 바뀌는 모습을 잘 활용한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명성, 인기에 따라 달라지는 신뢰도는 어떠한 진실을 믿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믿어왔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끝내 결론을 얻지 못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에 대한 사실보다 자극적인 논란만 남은 현대 사회를 보여준 것 같다. 영화 속에서도 결론을 짓지 못했지만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중점이 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는 긴박한 상황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통해 더욱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들을 결코 미화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모습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쉽게 무너뜨리고 어떤 의견에도 동의하기 어렵게 만든다. 후반부의 부족한 개연성으로 관객들을 끝내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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