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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un 07. 2024

떠난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기억의 시간을 모아.

영화 <원더랜드> 리뷰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2024년 6월 5일에 개봉한 영화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AI를 통해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한다. 이 영화는 앞으로 현실화될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휴대폰 너머에서 펼쳐지는 세상


영화에서는 세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 바이리,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를 다시 만나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한 정인, 그리고 원더랜드의 수석 플래너 해리와 신입 플래너 현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을 앞둔 바이리는 딸에게 죽음을 알리지 않고, 엄마를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다. 발굴 현장을 누비는 고고학자로 복원되며 딸과의 영상통화를 통해 생전에 못 다 이룬 사랑의 기억을 쌓아간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서비스가 종료되며 바이리의 세상에서는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한다.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를 원더랜드에서 우주인으로 복원해 행복한 일상을 나누는 정인. 그럼에도 태주의 온기를 마주하고 싶다는 허전함이 들 무렵, 의식불명의 태주가 기적처럼 깨어나게 된다. 현실의 태주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찾아오는 혼란은 마음의 균열을 일으킨다. 한편, 원더랜드의 수석 플래너인 해리는 어린 시절부터 인공지능 부모님과 함께 해왔다. 이용자들의 상황을 더욱 세심하게 살필 수 있었고 생각지 못한 오류가 생기며 '선택'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원더랜드의 세상.


원더랜드에 대한 서비스가 상용화된 미래세계가 펼쳐진다.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이용한 기술이 발전하여 가상의 영상통화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들의 감정과 기억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왠지 모를 이질감을 가지기 전, 플래너들 또한 이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마음'에 집중하여 기억으로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원더랜드의 가상 세계에는 허술함이 있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바이리의 행보에 도움이 되었다. 복원된 인공지능에 머무르지 않고 화면 밖의 세상을 위해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의 사회에 부족한 사랑의 감정을 감성적으로 잘 담아낸 영화였다. 바이리 이외에도 복원된 인공지능의 각성을 다룬 이야기가 들어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날 수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원더랜드.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영상통화 서비스다. 사망했거나 사망에 준하는 상태가 된 사람들만 신청할 수 있다. 원더랜드 서비스가 시작되면 그 사람을 볼 수도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온기를 느낄 수는 없다. 이별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원더랜드 서비스는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연장시키는 큰 장점이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그 사람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AI로 구성이지만 생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예로 바이리의 어머니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인이 다시 돌아온 태주에게서 괴리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원더랜드에서는 밝은 면을 부각하고 인공지능의 기능을 넣음으로써 그 이상의 이상을 실현하는 모습에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본연의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묻어있는 영화였다. 옴니버스 형식이 아닌 정인과 태주의 이야기를 메인으로 다루고 여러 가지 요소를 잘 섞어 두었다면 또 다른 흥미로움을 전해줬을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의욕만 앞선 따뜻함.


기대했던 작품인 만큼 실망도 컸다. 인간과 복원 인공 지능 간의 따뜻함은 진하게 남지만 언제든지 지울 수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잔인성을 덮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의욕만 앞선 따뜻함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느 것도 도드라지게 뛰어나다고 볼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AI가 시작되는 것도, 이 인물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 등장인물이 왜 등장하는지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개봉 전 정보를 보지 않았다면 성준이 바이리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누구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전에 펼쳐지는 감정 과잉에 당황스러웠다. 좋은 소재와 이야기를 선택하고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뻔한 '신파'를 되풀이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인공지능, 디지털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심층 있게 다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시사하거나 이를 통해 어떻게 해야겠다는 이야기는 감독님의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바이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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