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누군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퍼펙트 데이즈>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얼굴을 비추며 그가 살아온 세월을 짐작케 한다. 세월만큼 주름진 얼굴의 굴곡, 몸에 굳어진 습관이 성실히 살아온 그의 세월을 대변한다. 그렇게 영화는 그의 평범한 일상을 엿보며 그 평범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하기보다 현재의 그에게 집중하는 영화의 시선은 따뜻하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감히 훈수 두려고 하지도 않는 자세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일상이 변화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인 히라야마.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일상을 시작한다.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눈을 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화분을 돌본 후, 1층으로 내려와 세면으로 면도를 한 뒤 작업복을 갈아입는다. 현관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챙긴 후 집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 후 차에 올라타 출근길에 오른다. 스카이트리가 보이는 지점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렇게 일터에 도착하여 여러 장비를 챙겨 들어 시부야 거리 곳곳의 화장실을 청소한다. 그리고 신사와 산책로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울창한 나무를 감상한다. 그리곤 품에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꺼내어 순간의 풍경을 담는다. 그렇게 퇴근을 한 그는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은 다음, 도심 지하상가의 단골 식당에서 식사와 술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화분을 돌보고 자리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다시 같은 일상이 반복되며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그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전 날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반복한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긍정적인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의 업무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싫은 내색 없이 비켜준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흔한 짜증도 내지 않는다. 퇴근 후에도, 주말의 휴일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틈틈이 자신을 정돈한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일상은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를 맞이한다. 그 변화에 무너질 것도 같았지만 나름대로 자신 만의 해결 방법을 찾아 자신의 일상을 되찾아간다. 그의 의지를 더하듯 그가 손에 놓지 않는 책과 항상 듣던 노래들은 다채롭게 눈과 귀를 맴돈다. 다채롭게 감싸는 멜로디들은 삶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그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가족의 등장에서부터였다. 유일한 변수는 가족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과거에 해당하는 이들은 '유복함'과 동시에 '불안감'이었다. 딸을 찾으러 온 여동생과 남자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의도치 않은 재회를 겪은 후 찾아오는 감정의 동요는 사소한 일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매일 같은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누리는 즐거움은 자신에게 있어서 충분한 것들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찮은 것이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일까. 별 것 아닌 것처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들어오는, 어떤 감정들이 그에게 무슨 영향을 끼친 것인지 늘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던 그의 웃음 사이에서 소리 없는 슬픔의 울음이 새어 나온다.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의 얼굴에 빠져들며 그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과거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겪는 감정들이 온전히 전해진다.
그의 미소를 바라보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미래의 어떤 삶을 꿈꾸기에 저렇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그것을 지루하다 칭할 수 있는 것도 평범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가혹하고 비정하며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더불어 최고의 삶이 완벽하다고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완벽한 건 존재할 수 없으며 자신의 기준이 없다면 유지하기 어렵다. 그의 과거를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현재,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계속 닦아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유복한 삶을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는 배려와 존중이 사라져 가는 각박한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또, 보이지 않는 계급과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함에 대한 감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뱉은 자신의 말이 진리인양, 상대방의 모든 것인 듯 행동한다. 그 이미지가 고정되고 자신의 의견이 고착되는 그 장면까지도 보는 이로 하여금 사소한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하나 히라야마의 침착한 태도는 그동안의 삶에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짐작케 한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보다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남들이 만지기 꺼려하는 곳을 정성스레 닦고 어루만지고, 울창한 나무가 불거진 숲,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현재에 소중함을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청소 표지판을 세워두었음에도 표지판을 넘어뜨리고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를 엄마의 품으로 돌려주었지만 감사의 인사가 아닌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의 아이를 끌어당기고, 히라야마와 맞잡았던 손을 물티슈로 닦고 뒤돌아간다던지. 함께 일하는 청년의 일방적인 퇴사로 인해 피해를 입는 장면들.
2024년 7월 3일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으로 야쿠쇼 코지의 주연의 영화이며,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다. 본작의 ost 선곡이 상당히 뛰어나며 영화 속 분위기가 더욱 몰입감 있게 다가왔다. 히라야마가 듣는 음악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기도 하고 성실한 자세로 나를 돌보며 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상성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낙인 그에게 수많은 기록이 남아 꿈으로 투영되고 사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돕는다. 대뜸 불쑥 찾아오는 무의식의 욕망 또한 존재하지만 몸에 굳어진 경험과 지적 능력을 통해 욕망을 통제한다. 물론 특별한 사건은 없다. 행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누군가에게도 삶의 활력이 샘솟기를 바라는 마음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올곧은 나무를 바라도,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린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마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