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리뷰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2019년 10월 2일 개봉한 영화이다. DC 확장 유니버스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작품이다. 제76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과 음악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과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아서플렉이라는 인물이 점차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아 섬세한 연기력으로 큰 찬사를 받았다. 2024년 10월 개봉 예정인 <조커: 폴리 아 돼>를 관람하기 전에 전작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고담시에 사는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현실은 매우 가혹하다.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생계를 위해 광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채 괴로움을 겪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무시와 폭력을 당하기 십상이다. 자신의 꿈과는 점점 거리가 있는 삶 속에서 점차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아서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고담시를 혼란에 빠지게 만든 아서는 조커가 돼버리는데..
아서는 웃음이라는 강박에 갇혀 있었다. 그가 웃을수록 내면의 슬픔은 더 깊어졌고, 웃고 행복해지려 노력할수록 삶은 더 가혹해졌다. 아서는 통제할 수 없는 웃음 발작을 일으키는 병을 앓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점점 더 소외되었다. 웃음은 그의 내면의 상처를 감추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그를 더 큰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이처럼 아서가 처음부터 악인이 된 건 아니었다. 자신이 태어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현실의 삶을 열심히 살았다. 아서는 힘든 세상에 웃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아서는 그저 웃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그렇다고 관심 가져주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서가 사람들과의 웃음 포인트도 좀 달랐고, 유머에는 소질이 없었던 터라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존경하던 조지 프랭클린이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면서 아서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주었던 희망이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행했던 것들이 모두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서는 조커가 되어 '실패한 유머'를 완성시키기 시작한다. 그는 최고이자 최악의 코미디언이 되었다.
난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개 같은 코미디야.
아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고통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충동적인 행동,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늘 통제해야만 했다. "정신질환의 제일 나쁜 점은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항상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왔다. 코미디언이 꿈이었던 아서는 평생을 존재감 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선한 행동을 했을 때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악한 행동을 했을 때는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서는 극단적인 방법을 '이용'해야만 주목해 주는 이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조커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제는 아서는 힘겹게 올라갔던 인생의 오르막길에 비해 끊임없이 내려가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아서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또 다른 조커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내 삶보다 가취 있기를.
사회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고담시에서 희망이란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초반의 뉴스처럼 파업의 이유를 분석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으며 파업을 비난하는 보도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 신경 안 써요, 아서. 저 같은 사람한테도 마찬가지고요."와 같은 대사처럼 고담시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는 아서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희망이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연대와 이해 대신 공포와 혐오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로 인해 조커라는 인물은 단순한 악당으로만 그려졌고, 그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물의 다면성과 복잡한 인간성을 탐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건과 인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들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반영한다. <조커>의 이야기는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아서의 생각이 망상일지라도 영화는 그를 무조건 동정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서도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맞닥뜨리게 하면서도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쉽게 이입할 수 없게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그의 선택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는 조커를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접근은 오히려 악의 발생을 막기 위해 이해와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사회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잃을 때,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아서의 이야기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환기시키는 경고의 메시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