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범> 리뷰
김여정, 이정찬 감독의 <침범>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파노라마 섹션에 공식초청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2025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곽선영, 권유리, 이설, 기소유. 이 네 배우들의 미스터리 스릴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수영 강사 영은은 딸 소현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평화로워 보이지만 영은은 소현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학교를 몇 번 옮기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엄마인 영은 조차도 소현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간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소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기어코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현재, 고독사 현장 처리 업무를 맡고 있는 민과 새롭게 들어온 신입 혜영이 갈등을 겪는다. 그 속에서 밝혀지는 심상치 않은 균열 속에 이 사건과 얽힌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극 중 소현은 선천적으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지만 거듭된 학습을 통해 애써 감정을 꾸며낸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으로도 본연의 모습을 숨기는 건 쉽지 않았다. 거짓을 웃음으로 감췄지만 본능이 이끄는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다. 애초에 죄책감도 없었던 그녀의 행동은 방향을 잃은 채,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소현의 행동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 영은의 삐뚤어진 모성애였다. 소현을 통제하면서도 사랑으로 덮어주려는 시도가 상황의 해결이나 감정의 보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맹목적인 사랑이 '독'이 되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선천적인 폭력성과 사랑이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이 상황이 합쳐져 재앙을 불러왔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폭력의 상흔을 견디는 건 누구의 몫이 될까.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지만 인간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이성을 흐리고, 때로는 그 사랑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소현과 영은의 관계는 우리가 사랑의 본질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0년 사이의 공백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후에 나오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갈등과 상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지옥을 안고 살아간다. 상처에 부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형태로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설령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모성에 의해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고, 상처에 부유하며 거듭된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자세한 사정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들이 오직 알 수 있는 건 미지의 인물이 '침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침범으로 인해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끝내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채, 또다시 '침범'의 기회를 노릴지도 모른다.
때론 드러나지 않은 말들이 큰 힘을 가지곤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큰 관심을 가지는 건 드러난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포용력과 친화력 사이를 파고드는 폭력은 무척이나 날카롭다. 불운한 사고라고 치부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종적을 감춘다. 이 교묘한 술수는 점차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긋난 선의라고도 볼 수 없는 흔적들이 조금씩 지워져 간다. 늘 사랑을 갈구했지만 결국엔 그 결핍에 집어삼켜지는 것은 본인이었음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어떤 모성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결핍은 서로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조차 고통으로 변하게 만든다.
그 틈새를 '침범'하는 미지의 인물이 살아가기에도 벅찬 일상을 파고들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20년 전 멈춰버린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며 다시금 그 흐름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인물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은 관객들을 더욱 깊은 혼란에 빠뜨린다. '소현'은 누구일까. '영은'은 어떻게 된 걸까. 이 영화는 균열과 붕괴를 다루며, 그 안에서 서슬 퍼런 공포가 휘몰아친다. 인물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도무지 아이가 저지른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은 영화가 끝나도 소름 끼치는 감정을 남기고 그녀의 눈빛, 목소리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엄습하는 불안감과 함께 찾아오는 감정의 여운은 관객들의 내면에 깊숙이 파고든다.
영화 <침범>은 린 램지 감독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많이 닮아있었다. 관점이 다르다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모성의 복잡한 감정과 삐뚤어진 애정의 형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화를 연상하게 만든다. 사건에 대한 판단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 침범이 가져온 상처와 그로 인해 발생한 갈등이 인물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성의 본질이 가끔은 잔혹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그러한 감정의 무게는 지나치게 무거워서 단순한 말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감정에 치중한 만큼 영화는 나아가야 할 해결점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고, 영은과 소현을 제외하면 각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대해 몰입하기 힘들게 만들어져 깊이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 상영 일정
10월 4일 16:00
10월 5일 16:00
10월 7일 11:00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 참고.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75979&c_idx=403&sp_idx=548&QuerySte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