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트 라이트> 리뷰
켈리 오설리번과 알렉스 톰슨이 연출한 <고스트 라이트>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된 영화이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실제 가족이 연기하여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익숙한 소재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비극이라는 주제를 색다르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노랫소리를 지나 공사 소음이 들린다. 아름다운 날, 모든 게 뜻대로 된다는 가사와는 달리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댄. 설상가상 딸이 사고를 쳐 정학 처분을 받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며 골머리를 앓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가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극단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던 댄은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외면하던 감정을 마주한다.
진정한 나의 모습, 그 안의 아픔.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괜찮다"는 말로 회피하는 것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화 속에서도 댄이 아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은 나 자신이 괜찮지 않음을 털어놓고 나서부터였다. 영화 초반에 리타가 잠시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며 연극을 제안했듯, 댄 또한 아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강박과 죄책감은 그가 상실을 직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댄뿐만 아니라 아내 샤론과 딸 데이지에게도 그 상실감은 깊은 영향을 끼쳤고, 결국 가족 모두가 서로의 아픔을 직시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감추게 된다. 이것은 결단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하며 댄은 자신이 숨기고 있었던 감정을 조금씩 표출하기 시작했고, 점차 분노 속에 숨겨진 상실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연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하기에 결말을 바꾸고 싶었던 댄은 비극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고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아들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가족들은 연극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슬픔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한 집에 있지만 단절된 것처럼 느껴졌던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라보는 시선
영화의 제목처럼 고스트 라이트는 영화가 끝나도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 잔잔한 위로가 된다. 연극을 비롯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빛에 젖어들게 된다. 무의미하다고 느끼면 한없이 무의미해지고, 의미 있다고 여겨지면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의미를 외부에서 찾기보다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판단이 아닌 이해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짐작하게 만드는 상황과는 별개로, 영화는 가족의 사정을 자세히 드러내지 않는다. '비극'을 손쉽게 소비하지 않으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정확한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족의 아픔과 회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감정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사랑'만큼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고스트 라이트
고스트라이트(ghostlight)는 리허설이나 공연이 끝난 후에도 무대가 어두워지지 않게 빛을 비추는 것을 말한다. 그 무대를 누볐던 옛 출연자들의 유령을 배려한 전통이라고 한다.
영화는 정해진 결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바꿔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처럼 예술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어려우면서도 우리의 삶을 구원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삶 속에서 잠시 쉼과 사색을 제공하며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줄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들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속에서의 삶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영화 속의 댄 또한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게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단절을 연결로 바꾸는 힘이 있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예술은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고통과 상실, 그리고 기쁨과 희망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만큼 우리 선택과 태도에 따라 달라진 삶의 색깔이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 보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상영 일정
10월 4일 10:00
10월 7일 13:30
10월 9일 20:30
영화 관련 정보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75833&c_idx=404&sp_idx=&QuerySte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