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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Nov 06. 2024

영화라는 기억을 안은 사람들, 그 기억을 이어갈 우리들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리뷰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31년 만의 신작이며, 네 번째 장편 영화이다. 그의 영화들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걸작인만큼 이번 영화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제76회 칸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받은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2024년 11월 6일 개봉했다.



 미겔의 2번째 영화인 <작별의 눈빛> 작업 중 실종된 배우 훌리오 아레나스, 그가 실종이 되며 영화 제작이 완전히 중단된다. TV 탐사 프로그램 '미제이야기'에서 22년 전 실종된 배우 훌리오 아레나스에 대한 인터뷰를 제의받아 출연하게 된다. 사라진 그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미겔은 22년 전 실종된 친구 훌리오 아레나스의 흔적을 좇게 되는데..



미겔이 22년 전 연출했지만 미완성된 영화 <작별의 눈빛>은 그 자리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구가 사라진 후, 그의 영화도 삶도 모두 제자리에 멈춰버린 그 순간이 이어지며 새로이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 쓰고 있었던 소설 또한 멈춘 상태. 그렇게 우연히 TV 탐사프로그램 인터뷰 제안을 받으면서 오랜만에 영화 일을 함께 했던 친구와 재회하고,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영화의 필름을 다시 꺼내 들기 시작했다. 영화 같은 삶을 꿈꿔왔던 미겔은 '기적'을 바라게 된다. 많은 것을 실패하고 좌절했던 지난 과거를 겪었음에도 훌리오를 찾아 나서는 것이 어쩌면 허황된 믿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리오를 찾아 나서는 일은 본래의 자신을 깨우는 일과도 같아서 '영화'를 통해 그를 깨우려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미묘한 감정은 감독에 대한 연민일까. 영화가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영화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애틋함이 밀려온다. 마치 내가 그 시대를 경험한 것처럼 영화에 스며들었다. 마치 그 이야기를 이어가듯 영화는 과거의 기억을 품은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다소 간단한 줄거리와 미완성된 영화는 후반부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의해 그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우의 실종'은 쇠퇴이자 새로운 희망으로서 다시 시작된다. 프레임에서 벗어나면서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라는 장면과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과거의 영광에서 멈추길 바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눈을 감고 그 상황을 외면하며 그 시간이 사라지길 바랐거나 진심으로 염원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을 거라고 예측할 뿐이다. 인간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어 낼 수 있다고 믿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강렬한 메시지가 이곳을 울린다.



장면의 한 단락에서 시작된 어떤 이야기는 쉽사리 이어지지 않는다. 삶과 다르게 영화는 인간이 만든 이야기며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생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면 아마 이야기의 결말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영화를 보고, 간직하고, 또 즐기는 이유는 영화라는 것 자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 때문일 것이다. 지난 시대의 영화를 추억하는 사람들과의 시대적 차이는 물론 존재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같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 추억에 완전히 젖어들 수 없어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엔 그들과도 같은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간단한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치 31년의 공백을 채우듯 그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내며 인물들의 대화와 감정의 흐름, 그리고 관계를 깊이 있게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인물들의 대화를  생략을 할 법도 하지만 대화를 놓칠세라 모든 대화들을 빼곡하게 영화에 채워 넣는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그들의 대화를 놓치는 불상사(?)도 이어졌다. 확실히 요즘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아마 그가 기억하고 있는 필름 영화의 본질,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영화 속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을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쇠퇴하고 있는 영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이 가득한 모습이 영화에 담긴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깊이 있고 좋은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본질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장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미겔에게 투영되고, 변해가는 영화의 시대에 맞춰 영화의 기적 또한 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영화는 변화를 맞이했고 영화의 기적 또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영화라는 공간, 그 속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채, 눈을 감는 것으로 표현된다. 어쩌면 앞에서 마주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발전 혹은 쇠퇴라는 변화를 맞이한 영화의 방향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게 될까.


영화는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졌다. 1895년 영화가 탄생한 이후 영화는 사회의 풍경을 반영하고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릴스나 쇼츠처럼 간단한 영상 플랫폼으로 정보를 접하면서 그 영향력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심지어는 영화를 봐달라고 호소하기도 하는 등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요즘이다. 그래서 요즘 추세와 다른 흐름을 가진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상영시간은 다소 길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깊이 있는 영화를 보고 해석하는 시간적, 내적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깊이를 추구하는 만큼 그들 사이의 단단한 벽이 진입장벽을 만들어내어 거리감을 주기도 한다. 해석을 통해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있는 그대로 영화를 느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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