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 파이어> 리뷰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연출한 <어 파이어>는 2023년 9월 13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제7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자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전작 물을 소재로 한 <운디네>에 이어 불을 소재로 한 <어 파이어>는 잔잔하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이 녹아있는 영화다.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친구 펠릭스의 가족의 별장으로 향하는 펠릭스와 레온. 그곳에서 펠릭스는 예술학교 진학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계획이고 레온은 두 번째 소설을 집필할 계획이다. 두 사람만 머물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별장에 낯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온은 그 사실만으로도 불편한 가운데, 옆방의 낯선 사람이 자신의 잠을 깨우며 그 불만은 점차 커진다. 과연 레온은 두 번째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까.
글도, 사람도, 상황도 레온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가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딱히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레온은 쉴 새 없이 불만을 터뜨리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호텔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나디아와 인명구조요원인 데비트를 무시하는 등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싸한 분위기가 되어버리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들 사이를 겉돌며 스며들지 못하는 레온을 챙겨주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조금씩 배제되기 시작했다.
레온의 가장 큰 문제는 위의 상황이 자신에 의해 야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주변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보다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누군가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지만 그것이 자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관심'가지지 않으면 전혀 모른다. 아마 나디아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면 또, 자신이 인정한 기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나디아가 아이스크림 판매원이지만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달라진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출판사 사장이 빙빙 둘러 말했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직직 그어둔 그것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대목에서 알 수 있었다. 레온의 예술가적 자의식은 강하지만, 그의 실제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괴리감이 그의 열등감과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열등감이다. 타인과 '나' 사이에는 당연히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그 열등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표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다. 열등감과 존경과 같은 것들로 표현될 수 있으나 레온은 확실히 '열등감'이었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타인을 의식하며 그 불안감을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무시는 내면의 불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는 사이가 편해질수록 비호감에 가까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내뱉어 쌓아 놓은 호감도 깎아먹는다.
레온은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편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두 번째 소설이 잘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존재해 있었다. 하지만 창작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관심과 관찰의 시선이 레온에게는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은 그의 소설에 그대로 드러났다. 어쩌면 그 책 보다 더 형편없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변 상황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그러한 상태에서 유일한 관찰자였던 레온은 불이 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들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건넨다. 친구가 함께 하자는 상황에서는 일 핑계를 대고, 타인이 아픈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려 들면서 스스로를 점차 고립시킨다. 자존심과 고집을 좀 내려놓고 먼 곳을 내려보았다면 좀 달랐을 텐데,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용기도 내지 못한다. 열등감을 인정하지 못한 결과이다.
가던 길에 차가 퍼지고 그들은 숲에 고립된다. 몇 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불안감은 두려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펠릭스의 판단으로 인해 상황은 빠르게 해결이 됐지만 짐승의 울음소리, 헬기 프로펠러 소리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그들이 시내에 나가 음식을 살 때, 이곳보다 훨씬 떨어진 산에서 발생한 화재 상황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지 않아서인지 실감도 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산불 소식은 어느새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하늘을 뒤덮은 붉은 열기, 바람에 떠밀려온 잿가루는 그 상황에 직면해서야 실감케 했다. 불은 한 번에 많은 것을 앗아갔으며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처럼 영화는 화재라는 재난 상황을 사람에 대입시킨다. 이미 화재라는 상황은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것을 사람에 대입시켜 보다 더 재난적인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불이 난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와 인접해 있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재난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을 정도의 둔감함을 심어두어 그들의 일상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위험성을 모두가 알아차릴 때쯤 이미 늦었다는 듯 그 상황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마치 레온이 상황파악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과 맞물린다.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변화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부분이었다.
무서운 건 그들이 모두 옳았다는 것과 언젠가 이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의 사랑 노래는 닿은 듯 보였으나 끝내 닿지 못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타인보다는 자신을 생각하며 행동했고 그의 행동에 지친 주변 사람들이 바른말을 해주어도 그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건 그의 오만함의 증표였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과연 좁힐 수 있을지는 그의 행동에 달렸다. 그렇게 그의 시야에는 죽어가는 생명 혹은 타버린 흔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으며 불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오만함을 온전히 해소하지 못함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겪은 그는 자신이 쓰려는 소설의 세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까? 뒤에서 움직이는 형체를 이제는 마주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그가 너무 답답했다. 이기적이고 냉소적이며 자기중심적이기까지 한데, 열등감에 찌질하기까지 한 이 남자의 행동이 이해 갈 리가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게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점차 이야기의 형체가 드러나고 그 속에 웅크려 있는 레온이라는 사람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상황에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그 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의 내면에서 나온 냉소의 출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영화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게 그려져서 인지 혹시 나도 저런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건네는 그 말들이 오로지 나를 위해 이루어진 말이라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지로 나라는 사람이 구체화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 만큼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 끊임없는 실패와 자책을 반복하며 자성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모습이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아집을 꺾어 놓을 힘을 발휘할 사랑을 바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절대 닿을 수 없는, 고려할 필요도 없었던 '불'의 존재는 점차 커져 그들을 덮쳐 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