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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면한 신호, 평범한 하루를 파괴한 악의 평범성

영화 <앨리펀트> 리뷰

by 민드레


거스 밴 샌트 감독이 연출한 <엘리펀트>는 1999년 4월 20일 발생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로 2003년 개봉했다. 제56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는 사건을 재현하거나 사건에 대한 원인을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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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러 학생들의 하루를 보여주며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따라간다. 늘 술에 취해있는 아버지에 의해 골머리를 앓는 존,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 엘라이어스, 따돌림을 당하는 미셸, 네이선과 캐리, 몰려다니는 여자친구들의 모습이 차례대로 비친다. 한편, 알렉스와 에릭은 평소와 다른 복장으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앞에서 존을 만난 두 사람은 "여기서 나가. 큰일이 벌어질 거야"라고 경고했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존은 다른 학생들에게 알리려 하지만 그들은 존의 말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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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두 사람이 학교로 들어가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알렉스와 에릭은 평소 총 게임을 즐기고 나치즘 선전 영상을 보곤 했다. 그리곤 인터넷으로 총을 주문해 시험해 보고 계획을 짠 후 학교로 나선다. 어떤 이유인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악은 예고도 없이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벌어진 폭력은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의 폭발력을 가졌고 무차별적이다. 보통의 얼굴로 찾아올 때, 개인의 한없이 무력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생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심스레 파고들었다. 명확한 동기 없이 벌어지는 이 학살극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되돌아보면 그들의 했던 행위는 충분히 예견될 수 있으며, 감지할 수 있었던 징후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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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특정 이념이나 강렬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범죄를 저질렀다기엔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는 무관심과 무력감, 그리고 일상적인 폭력에의 노출이 어떻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특별한 계시나 드라마틱한 전환 없이, 그저 그들의 일상적인 행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의 이미지를 깨뜨리며, 평범한 개인 안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어두운 면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 뚜렷한 사건 뒤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크게는 총기 관리 미흡 및 총기난사에 대한 내용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학교폭력, 청소년 고립, 정신 건강에 대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이처럼 모두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사회의 병폐들이 곪아터진 폭발음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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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 영화 제목의 '엘리펀트'는 맹인이 코끼리의 어떤 부위를 만졌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한 설화에서 따온 만큼 영화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를 관객에게 내밀고 더듬어서 저마다의 감각과 경험을 이용해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을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닌, 등장인물들의 일환으로 위치시키며 사회적 문제를 더욱 깊숙하게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무엇보다 감독은 총격의 참혹함을 과장하거나 가해자들의 내면을 지나치게 파고들어 연민을 유발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건을 화면 그대로 담아내어 사회의 무관심과 개인의 고립이 만들어낸 비극을 보여준다. 줄거리를 읽고 영화를 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전개는 오히려 더 큰 긴장감을 자아내고, 동일한 사건 전후로 여러 학생의 시선을 따라가는 구조로 이루어진 만큼 긴장감과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엘리펀트>는 '방 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처럼 우리가 알고 있지만 외면해 왔던 사회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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