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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의식은 열등감인가 우월감인가.

영화 <의식> 리뷰

by 민드레


클로드 샤브롤 감독이 연출한 1995년 영화 <의식>은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장주네의 하녀들의 모티브가 되었던 파팽 자매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계급 갈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섬뜩한 질문을 던지는 샤브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자벨 위페르와 상드린 보네르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의식>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52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이자벨 위페르, 상드린 보네르)을, 제21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이자벨 위페르)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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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소피는 릴리브르 집안의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조용하고 묵묵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며 집안을 돌보고 있다. 처음의 말과 다르게 휴일에 일하게 될 때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집안 식구들이 여행을 떠날 동안 집을 보게 된 소피는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기도 전에 찾아온 위기로 인해 잔느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렇게 우체국에서 일하는 잔느와 친해지게 된 소피는 평소에 가지지 않던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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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갈등의 양상


현대의 계급은 과거보다 더 세분화되어 있으며 부가 계급을 나누는 기준으로 고착화되고 있어 계급의 평화는 쉽게 유지되기 힘들다. 이러한 계급 사회에서의 사회적 위치는 특히 하층 계급에게 다소 불안정하게 작용하며 그들에게는 '연민' '냉정' '증오'와 같은 욕망의 경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욕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영화는 "선한 사람들에게도 혐오스러운 면이 존재한다. 악은 누구 안에도 존재하니까."라는 대사를 통해 계급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선과 악이 공존함을 보여주고, 단순히 계급으로 선악을 구분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 미묘한 신분의 경계선 사이에서 어떤 균열이 일어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절대적인 신분 구분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계급을 뒤집어엎는 과정이 옳다고 보지는 않는 듯하다. 변화가 아닌 파멸을 불러일으킨 이들의 행위를 완전 범죄로 마무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거가 없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녹음기가 발견되면서 홀로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할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의 정당성을 미화하지 않는다. "정의는 인간의 산물이다."라는 말처럼 그들이 행동이 최선의 방식이 아님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해 도출하고자 했던 정의와는 거리가 먼 개인의 이기심과 증오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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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소피는 사실 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는 '선글라스', 'TV'가 이용된다. 갖은 노력으로 감추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처럼 소피의 잠재된 무의식은 비밀과 콤플렉스에 얽힌 열등감이었다. 소피의 무의식을 영화에서 세밀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잔느와의 만남을 통해 소피의 잠재된 무의식을 깨우고 당연하지 않은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아무런 도움과 배려를 주지 않았던 식구들과는 다르게 극 중 유일하게 도움을 주었던 멜린다를 통해 소피의 억눌렸던 감정들이 폭발한다. 극 중 멜린다의 도움이나 연민이 오히려 소피에게는 멸시와 동정으로 느껴져 그녀의 열등감을 더욱 자극하고 소피의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녀가 소피에게 베풀었던 호의는 계급적 차이를 오히려 부각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어쩌면 지나친 적대감일지도 모르지만 노골적인 멸시와 앞, 뒤가 다른 애매한 친절이 증오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계급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반격은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될 수 없는 파멸을 불러일으켰다. 계급 갈등과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낸 씁쓸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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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위선.


부르주아의 허영심과 가식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다루고 있다. 그들은 은연중 우월감을 드러내며 가식과 교양 그리고 허영심을 자랑한다. 가족들이 숙덕거리는 장면, 식사를 같이 하지 않으려는 장면, 파티 장면은 하층 계급을 멸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피를 배제하며 결코 같이 할 수 없다는 듯 선을 긋고, 고상하고 우아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뒤에서는 은근하게 무시하고 앞에서는 티 나지 않게 착취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위선이 드러난다. 또한, 초반의 약속과는 달리 휴일에도 온갖 집안일을 시키고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는 모습은 하층 계급을 대하는 부르주아의 무의식적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톨릭 성당의 신부와 교인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선한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넝마에 가까운 옷이나 물건들을 기부한답시고 내놓는 것은 알량한 자비를 베푸는 듯한 위선이었다. 진정한 나눔이나 봉사가 아닌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직접적으로 파멸을 불러일으킬만한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계급적 편견과 멸시는 소피의 분노와 열등감을 자극했고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는데 일조했다.


여기에서 계급이 낮다는 것은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일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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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소극적으로 드러냈던 부르주아에 대한 적대감은 <의식>에서 폭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두 가지 갈래로 나뉘는 영화의 의식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의 행위를 어떤 단어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과 긴장감이 가득한 분위기로 가득 메우는 가운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두렵게 만들었다. 어쩌면 소문에 불과한 일들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영화를 볼 때만큼은 명확했던 것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온통 어려운 것들로 가득해졌다. 이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시선을 유지했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양쪽의 입장에 모두 공감하게 만드는 영화의 화법이 흥미로웠다.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의 힘이 돋보였던 영화였다. 이와 비슷한 계급 갈등과 관련된 영화를 또 감상하고 싶다면 <기생충>, <하녀>, <절멸의 천사>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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