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 리뷰
한 가지 단어로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일 것이다. AI 조차도 학습하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라고 늘 생각한다. 그런 의문에 의문을 품는 영화 <HER>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작이며 2014년 5월 22일에 개봉하여 2025년 로스에인절로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이 계절마다 생각나는 이 영화 <HER 그녀>는 그 명성만큼이나 2번의 재개봉을 거쳐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몇 번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들로 인해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나중에 이어서 봐야지 하던 게 2025년이 되어버렸다. 2025년을 배경으로 한만큼 이 미래 이야기가 현재와 얼마나 맞닿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테오도르는 편지 대필작가다.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담아내어 마음을 전달해 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테오도르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사만다는 자신의 무료한 일상을 채우고 테오도르는 점점 그녀에게 이끌려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이 인공지능은 단순한 운영 체제가 아니며 의식이 있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아는 직관적 실체라는 것이다. 간단한 질문을 통해 운영체제를 구성하며 철저히 사용자에 맞추는 서비스인 만큼 테오도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사만다뿐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만다는 동시에 10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 그뿐만 아니라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는 '감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여 테오도르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의 사랑은 가능한 걸까? 이 질문은 여러 관점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참 어려운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의 감정만큼은 인간의 고유의 것이라고 봤는데, 이 영화에서는 가능하니 말이다. 하지만 '인공 지능의 사랑'은 불가능하다. 사랑은 논리체계나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감정에서 비롯된 '교감'이 아닌 '학습'을 통해 형성된 것일 뿐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며 철저히 사용자의 형태에 맞춘 것인 만큼 과연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깊이 아끼는 책'으로 여긴다는 발언은 학습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테오도르 또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수많은 것들이 대체될 수 있지만 감정만은 인간의 고유의 것이라는 말에 쉽게 반론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발전을 거쳤다. 그래서인지 2025년을 넘어선 미래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영화에서는 인공지능이 이런 역할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이 감정을 대체하거나 더 나아가 이를 학습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현실이 두려웠다. 설령 인공지능의 학습된 감정을 표현할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이. 실체 없는 대상과의 사랑이 과연 가능한 걸까.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사랑하는 이와 나누던 그 감각을 떠올린다. 입술, 말, 손길, 포옹 그 전부가 그의 내면을 감싸며 그 고독한 공허함은 극대화된다. 직접 묻고 싶었던 말들이 흩어지고 추억, 기억, 온기, 흔적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테오도르는 와이프 캐서린이 이혼 소송을 걸어온 관계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간다.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와이프와 별거 상태에서 이혼 소송을 회피하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한다. 캐서린과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도,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분명히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지만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갈등의 상황에는 회피하는 성향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상대방이 그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저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곤 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바뀔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지난 관계도 새로운 관계도 제대로 형태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과 타인이 정의하는 '나'는 다른 만큼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테오도르는 특히 심한 것 같다. 과거의 기억에 매몰되어 현재를 마주하지 못한다. 테오도르의 실수는 캐서린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그리고 심지어는 인공지능 사만사와의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사랑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가거나 매듭짓는 것을 어려워하는 남자였다. 그의 내면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채우고자 하는 결핍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결핍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쩌면 이러한 성향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그는 어머니를 언급하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엄마의 문제인 것처럼 행동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감정적 결핍과 이를 채우고자 하는 갈망이 지금의 관계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의 감정적 단절에 대한 이야기 또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테오도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허공에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익숙한 풍경은 낯설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것들이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변했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는 점점 더 형식적이고 표면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AI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교류보다는 자신의 세상 속에서 AI와의 교류가 익숙해 보인다. 사람들과 교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더욱 삭막해졌다. 특히 편지에 담아낸 글들에 담긴 마음은 진심이지만 마음조차 타인의 언어로 전달하게 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간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과연 기술이 만든 관계망 속에서 '진짜' 인간다움을 계속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간다. 진정한 감정을 나누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기술은 인간적인 감정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 간의 깊은 교감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에이미가 만드는 작품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다큐멘터리의 의도를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의 수단으로만 쓰였지만 나는 그 다큐멘터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가 우리 삶 가운데 어떻게 1/3을 자면서 보내냐는 것에 관한 작품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우리가 좀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잠자는 시간만큼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아무런 제약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자유를 잠이라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순간에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까. 에이미라는 사람과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진정한 자유를 잃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
영화의 결말을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씁쓸해진다.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룬 만큼 한 사람에 대한 성향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외로울 때 보면 더욱 외로워지는 영화다. 글로도 옮겨 적기 힘든 감정들을 영화에 펼쳐놓아 그 감정의 깊이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테오도르의 직업이 대필 작가인 것처럼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의문으로 남아 있어서인지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불완전하게 끝을 맺는다. 인간의 감정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주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테오도르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건 아니다. 그녀(캐서린, 사만사, 에이미)들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마주하게 된다. 꼭 이성적인 감정에 의한 사랑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유대, 교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채워간다. 외로움에 의한 고독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누군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왜냐면 난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랑해요. 난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랑해요. 난 내가 당신 곁에 있으면서 당신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게 너무 기뻐요. 사랑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