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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인된 폭력에 침묵을 거부한 여성들의 목소리.

영화 <위민 토킹> 리뷰

by 민드레


세라 폴리 감독이 연출한 <위민 토킹>은 미리엄 테이브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으며 그 책은 2009년 볼리비아의 한 메노파 마을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삭 수상,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각색상 수상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이다. 미국에서는 2022년 12월 23일 개봉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개봉되지 않았다. 서울여성영화제와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와이더 시네마 시리즈에서만 공개되었던 작품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개봉하지 않는 영화 <위민 토킹>의 리뷰를 이제야 하려고 한다. 미루어 두었던 이유는 개봉할 때쯤 풀어내어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도 수입되지 않고 개봉할 기미도 보이지 않으며 ott로도 풀리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해당 영화의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다.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위민토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면 국내에서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위민 토킹이라는 영화의 리뷰이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볼리비아의 한 메노파 공동체 마을에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다. 공동체 마을에 사는 남성 8명이 300명이 넘는 여성들을 식물 벨라도나로 만든 동물용 마취제 스프레이로 여성들을 의식을 잃게 만들어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들은 피해를 입은 다음 날 피를 흘리기도 했으며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깨어나기 일쑤였다. 마을사람들은 이 범죄를 두고 그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유령이나 악마가 내린 벌, 관심을 끌려는 거짓말, 말괄량이의 상상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성폭행을 저지르려던 두 남성의 범죄행각이 발각되며 피해 여성들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게 범죄 사실이 밝혀진 후, 자치 공동체 주교와 원로들은 범죄자들을 헛간에 몇십 년 동안 가둬놓으려 했으나 피해자 가족들이 범죄자들을 공격하자 '신변보호'를 위해 공동체 역사상 처음으로 경찰을 불러 넘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로들과 주교는 가해자들을 용서한다면 모두 다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으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강요했다. 만약, 여자들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며 천국에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그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메노파란 종교 개혁 시기에 등장한 개신교 교단이다. 이 교단의 신자들은 시골 지역에서 자기들만의 마을을 형성하며 전기와 연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등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여성들의 선택, 결정권.


범죄를 저지른 건 그들이지만 종교의 교리를 들어 용서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추방될 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엄포를 놓으며 마을 여성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이러한 압박에 여성들의 선택이 의미가 있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통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을 발굴하고자 하는 의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가장 소외되었지만 그들보다 더 소외된 사람들까지 굽어 살피며 진정한 '평화주의'를 펼쳐내고 있었다. 침묵으로는 우리 자신과 자식들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며 시작된 일들이었다.


그들에겐 분명히 세 가지 선택지와 이틀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같았다. 가해자인 남성들은 '보호'를 받고 있었고 공동체 마을의 여성들은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위험에 처해있었으며 용서를 강요받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자체적으로 투표를 한다. 1. 떠난다 2. 싸운다 3. 용서한다. 싸운다와 떠난다가 같은 득표수를 얻으며 최종 결정을 위해 토론을 펼치게 된다. 여성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읽을 수 없어 토론에 앞서 어거스트를 서기관으로 참여시키고 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다.



진정한 대화라는 것.


마을의 여성들은 살림, 청소, 육아 역할에서만 중심이 될 수 있었으며 기타 중요한 결정권은 모두 남성에게 물어 결정해야 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들은 사실 당연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일임에도 발언권이 없었던 여성들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우선, 그들은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성들이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사냥감'으로 치부되어 폭행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남자들의 사고방식은 원로들과 주교가 만들어낸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기 위해 그 남자들을 용서해야 할까. 용서하지 않고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파문' 당하는 것이며 '천국'에 갈 수 없다. 하지만 남아서 싸운다면 남자들에게 질 것이며 반항한 죄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깬 죄로 인해 무력하게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싸워 이기게 된다면 여자들과 남자들이 모든 결정을 함께하기 여자들에게도 생각할 권리를 허용하기 소녀들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기와 같은 삶의 조건을 적은 성명서를 내자는 의견도 나왔다. 떠난다면 이보다는 안전할 것이며 남자들을 용서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폭력을 저지르지 않게 되며 메노파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콤마야. 잠시 멈추거나 숨 쉬라는 표시지



무엇이 선인가.


그들은 무엇이 선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진실한 것, 명예로운 것, 정의로운 것, 순수한 것, 즐거운 것, 훌륭한 것, 뛰어남이 있고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이것들을 생각하면 신의 조화가 함께할지니' 메노나이트 신앙의 핵심 교리는 '용서'와 '평화주의'이다.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아닌가라고 말하며 용서와 복수에 대한 토론이 뜨겁게 오간다. 그리고 평화주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떠남과 도망의 차이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순간이었다.


같은 기억을 안아 고통으로 가득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지만 저마다의 생각과 의지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여성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남성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식민지의 산물과도 같은 이러한 문제들은 크게 남자가 아닌 세상과 여성에 대한 관점의 문제라는 것이 드러난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죄의식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싸우지 않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떠나면서도 남은 소년들을 걱정하며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런 여성들을 바라보는 어거스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유일하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한 남자는 평생을 소외되며 살았지만 평생을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왔다. (주교와 관련 있는 일로 추정) 울음을 삼키며 남자는 돌아오지 말라고 말을 건넨다.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사랑을 떠나보내서라도. 그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감히 끼어들지 못했으나 그녀들을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교육자로서 남으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이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정말 놀랍게도 실화가 바탕인, 14년 전의 일이다. 21세기에 일어났다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2009년 볼리비아에서 일어났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중형이 선고되었으나 비슷한 폭력과 성범죄가 계속 일어났다고 한다. 현재의 시대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생각하는 것'은 복잡한 것이 되었으며 진지함은 오글거림으로 치부되며 친절은 위선으로 비쳤다. 현시대의 사회에서는 토론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 같다. 목소리가 큰 사람, 유명한 사람의 입장이나 의견이 중요시 여겨지고 그것이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이러한 의견들이 유의미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같은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적대시하는 것이 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잣대에 따라 신앙을 판단하고 적용하며 하늘의 뜻이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수단과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끊임없는 어리석음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한다. 같은 것을 보고 느끼지만 다른 생각으로 배출하는 이 사실이 참으로 참혹하다.



초반의 잔잔한 분위기가 자칫하다 남성들의 습격으로 불안한 상황이 반복되고 무기력한 모습이 등장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폭력으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차분히 말로 풀어가는 과정이 다소 흥미로웠다. 또한, 원작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우선 화자의 목소리가 달랐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 소설을 볼 때 사실 제일 의문이었던 어거스트가 화자였다는 사실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오트제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에서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현실을 담아내며 미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다만, 소설의 세밀함을 온전히 담기에는 버거운 느낌이 있었고 관객을 관찰자 시점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두어 몰입감이 들기 어려웠다. 또한,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영화를 보면 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


원작 소설이 상상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여성 운동에 대한 섬세하게 기록한 것들을 담아냈다면 영화는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 전이든, 보고 나서든 반드시 원작 소설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면서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선택을 해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다룬 영화는 직접적인 사실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범죄에 대한 사실 묘사가 되어있지 않아 오히려 더 끔찍했다. 책으로 봤을 때도 참 끔찍했는데, 영화에서 흔적이 남은 몸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표정이 뇌리에 박혔다. 이 영화는 폐쇄된 공간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나 책의 내용이 현실과는 많이 다른 선택일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 공동체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현실은 생각보다 더 답답하고 끔찍할 정도로 참혹하지만 이 영화에는 희망과 연대가 가득 담겨있다. 묵인된 폭력에 여성들이 침묵하길 바랐지만 이들은 침묵 대신 목소리 내기를 선택했다. 끝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신을 지켜갈 여성들을 응원한다.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응원한다.






위민 토킹 원작 소설 리뷰



https://mindirrle.tistory.com/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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