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향 아래 있는 여자> 리뷰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들은 걷잡을 수 없다. 금이 가기 시작하는 어떤 관계는 조용하게 서서히 무너지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붕괴된다. 존 카사베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그 지점을 파고들어 그 안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 <영향 아래 있는 여자>의 원제는 A Woman Under the Influence이다. 그대로 직역하면 영향 아래 있는 여자가 맞지만 영화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제목이 되어버린다. 일본에서는 부서져 가는 여자 こわれゆく女의 제목으로 개봉하였다. '부서져 가는 여자' 혹은 '무너져 가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해당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메이블은 훌륭한 와이프이자 어머니로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해도 자신을 억누르려 노력한다. 한편, 남편 닉은 건설 노동자로 성실하고 다정한 성정으로, 때로는 이상하게 반응하는 와이프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인의 말에도 조금 예민할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병적으로 요동치는 메이블은 그저 예민함이나 감정기복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 메이블을 가만히 둘 수 없었던 닉은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하게 된다.
메이블은 평소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일상을 살아가지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한다. 특히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받는 순간에 그 감정은 폭발하고 만다. 타인과의 관계가 불편한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닉의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라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차근차근 이 영화를 곱씹어보니 메이블은 닉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고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매번 방해받고 그것을 이해받지도 못한다. 때론 남편의 동료들이, 아이들이, 또 시어머니가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두 부부의 공간이 식당이자 간이침대가 놓여 있는 방이었기에 개방되어 있고,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녀의 불편함과 불안함은 더욱 극대화된다.
처음엔 낯설고 과하게 그녀의 감정이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되기 시작한다. 바로 닉의 태도에서부터였다. 그는 다정하고 매우 성실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한다. 메이블은 사랑의 안정감을 갈구하지만 닉은 그만큼의 사랑을 나누어 주지는 못한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메이블의 불안은 애정결핍과 가깝다 여겨져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여성상을 생각해 보면 의지할 곳이 남편과 아이들이 전부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블이 와이프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닉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준다. 깨진 저녁 식사로 인해 무척이나 슬퍼하는 와이프의 모습을 봤으면서도 아침부터 동료들과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던지, 사적인 공간에 동료가 들어와 메이블이 불편한 기색으로 도움의 눈빛을 요청해도 알아채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불편한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알면서도 고부 갈등을 제지하지 못하며 그녀가 폭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양극성 장애는 일상의 자극이나 압박에 취약하며 환자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고통을 안긴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는 메이블이 아닌 가족의 시점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토대로 영화 리뷰를 작성하기엔 이 영화의 전부를 이해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한번 더 곱씹어 보기로 했다. 메이블의 감정을 좀 더 헤아리게 되면서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항상 메이블은 애써 웃어 보이는 모습으로 그 상황들을 견뎌왔었다. 굉장히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자신조차도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한다. 극도로 불안정한 내면을 안은 채, ‘좋은 엄마’이자 ‘괜찮은 아내’라는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점점 '무너져가는 여자'가 되어간다. 그녀는 가족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며 고립되었다. 그때 당시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을 것이다. 감기처럼 약만 먹으면 금방 낫는 병이 아니며 특정 상황이 오면 격렬하게 반응하는 병이었다. 따라서 단순히 '의지'가 없어서 혹은 '나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메이블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메이블의 병이 악화되면서 평화로웠던 가정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가족들의 시선 또한 반영하고 있어 카메라 또한 그들의 시선에 따라 움직인다. 닉은 평범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그럴수록 닉은 평범해 보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평범함을 연기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평범함을 되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동안 꾹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리며 오히려 평온을 찾는 모습을 통해 '정상'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많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정상과 비정상, 사랑과 억압의 경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영화 속에서는 온전한 정상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정상'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려 하는 걸까.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양극성 장애에 대해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점차 무너져가는 메이블과 그에 영향받는 가족들의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일상을 그대로 담아내어 더욱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카메라는 그녀의 요동치는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상 자체가 영화의 전부인 것 같이 느끼게 만든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메이블의 문제와 그로 인한 가족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신에 메이블과 가족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직면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 평온함이 어떻게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지하게 될 것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정상'이라는 기준에 얽매여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삶이 끝나지 않듯 영화 또한 정해진 결말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