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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면서도 머무는 그 마음,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 <남과 여> 리뷰

by 민드레


남과 여, 같은 세상에 살아가지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것 같이 참 어렵다.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두 존재가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1966년 개봉한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영화 <남과 여>는 이 명확해 보이면서도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랑의 본질을 꾸밈없고 친밀하게 담아내어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이 영화는 제19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 아카데미 외국어상, 각본상까지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60년 후, 이 영화는 제78회 칸 영화 공식포스터로 다시 등장했다. 칸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상징적인 장면을 담은 두 가지 버전의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었으며 “분열되고, 구분되고, 억압받기 쉬운 이 시대에 칸영화제는 화합을 추구한다”며 “몸과 마음, 영혼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자유를 북돋우며, 삶의 움직임을 표현함으로써 생동감을 이어가려 한다. 우리는 삶의 소용돌이를 온전히 담아내고, 그것을 다시 기념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시대에 따른 가치관, 생활양식은 많이 달라졌지만 사랑의 본질만큼을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남녀의 눈빛, 조금씩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랑이 쉽지 않은 현대 사회에도, <남과 여>가 가진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언어로 포용하겠다는 의미로 비친다.



안느는 파리에서 영화 스크립터로 일하며 혼자 살고 있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도빌의 기숙학교로 딸을 만나러 간다. 장루이는 카레이서로 주말마다 차를 몰고 도빌의 기술학교로 아들을 만나러 간다. 안느는 딸과 시간을 보내다가 막차를 놓치고, 평소라면 근처에서 묵었겠지만 일 때문에 파리로 돌아가야 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때, 장 루이가 곤란해 보이는 그녀에게 데려다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장 루이는 그녀에게 관심을 표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안느는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남편이 걸리는 듯 선을 긋는다. 그럼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간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동안, 장 루이의 아들 앙뚜안과 안느의 프랑스와즈 역시 서서히 마음을 연다. 미묘한 어른들의 망설임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간다.



영화 속 안느와 장 루이는 사랑의 표현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서로를 향한 적극적인 표현과 적절한 만남의 순간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닿고 서로를 확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사별이라는 공통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여전히 마음속에 사랑하는 존재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르다. 사람에 따라 다른 부분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남자는 현재를, 여자는 과거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장 루이는 적극적으로 다가서며 새로운 사람을 향해 사랑을 표현하는 반면, 안느는 떠나보낸 남편에 대한 사랑과 기억 때문에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망설인다.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쉽지 않은 과정임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의 힘은 강하지만 흩어졌을 때의 상실은 견딜 수 없이 아프기 때문에 시작을 더욱 주저하게 만드는 걸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대사를 최소화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내면적 갈등이나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작품에서 오마주 되었던 영화의 장면이나 OST 모두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오직 눈빛과 행동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유추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조심스레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는 마음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면서도 머뭇거리는 모습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신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무지 잊히지 않는 과거로 인해 현재를 놓친 그때, 그들에게도, 보는 관객들에게도 답답한 실망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찰나, 말보다 진심이 통하고 표현보다 행동으로 나서는 그런 사랑을 표현하는 <남과 여>의 마무리는 여운이 깊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이 깊은 감정의 파동을 만들어내는 이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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