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만과 편견> 리뷰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지 않는 로맨스 명작을 꼽으면 항상 빠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제인 오스틴의 정수를 현대적 감각으로 탈바꿈한 조 라이트 감독의 2005년작 <오만과 편견>이다. 수많은 리메이크작 중에서도 유독 이 영화가 '클래식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감정을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바꿔내기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을 넘어서는 사랑의 모습을 어떤 형태로 빚어낼까.
이 영화가 그려내는 로맨스는 호감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흩뜨려놓고 어떤 감정으로 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의 오만과 편견은 자신의 자아에 따라 견고해지는데, 그 벽을 허물고 타인을 들여놓는 과정을 그려낸다. 다아시의 오만함은 신분이라는 갑옷에서,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자신의 통찰력을 과신한 지적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의 가치관은 평행처럼 교차하지만 두 사람이 마찰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두 사람의 감정은 마차에 오를 때 스친 손등의 떨림이나 빗속의 거친 숨소리로 표현되며 대사보다 더 선명하게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영화는 로맨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오만과 편견은 '사랑'에 국한되어 표현되지 않으며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기반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베넷 가의 '사정'에서부터 출발된 이야기는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집안의 모든 재산이 먼 사촌에게 넘어가는 한정상속이라는 제도에 의해 급히 '결혼'이 진행된다. 이 지점에서 로맨스는 '낭만'이 아닌 '생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베넷 부인이 그토록 천박할 정도로 딸들의 혼처에 집착했던 이유는 속물근성뿐만 아니라 남편 사후에 딸들이 길거리에 나앉아야만 하는 미래에 대한 공포였다. 이러한 시대적 결핍은 다아시에게는 '지켜야 할 고결한 선'이라는 오만을, 엘리자베스에게는 '가난하지만 꺾이지 않으려는 자존심'이라는 편견을 안겨주었다. 이 타협점에서도 자매들은 저마다의 사랑을 쟁취하며 각기 다른 삶을 꾸려간다. 누군가는 순수한 애정의 결실을, 누군가는 현실과의 냉철한 타협을 택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한다.
그런 시대에서 여자의 '거절'은 의례상의 내숭이거나 무모하다 여겨졌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시대의 한계선을 지우며 우아한 로맨스를 펼쳐낸다. 그녀가 택한 것은 생존을 위한 반려자가 아니라 '대등한 존엄'을 위한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이 충돌하는 말과 감정은 극의 중반부부터 차츰 충돌하기 시작한다. 다아시의 오만은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공고히 만들다 못해 혐오의 감정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심 어린 변명은 그의 오만이 고결한 침묵이었음을 깨닫게 했고 그녀의 편견은 부서져 내린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마지 않던 통찰력이 눈먼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옳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지적인 통찰의 눈을 뜨게 된다. 자신의 그릇됨을 직시하는 용기는 오만이 무너진 자리에 진정한 사랑을 심을 수 있었는 거름이 되어준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결말은 미국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표현이 어색하던 다아시가 정말 달콤할 정도로 자신의 사랑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영국판에서는 아버지에게 두 사람의 결합을 확인받고 달려나가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기 때문에 자신의 오만을 깎아내고 편견이라는 눈꺼풀을 걷어낸 두 사람이 만들어낸 '보폭'의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우아한 시대극에 국한되지 않는 이유는 뛰어난 영상미에서 완성된다. 200년 전의 낡은 문장을 살아 숨 쉬는 오늘의 감각으로 부활시켜 친 빗속의 질감, 인물들의 미세한 숨소리, 그리고 태양의 역광을 섬세하게 이용한다. <오만과 편견>이 여전히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사랑이란 결국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그릇됨을 직시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용기임을 가장 아름다운 영화적 언어로 증명해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매일 자신의 오만과 싸우고, 타인을 향한 편견의 안개를 걷어내야 하는 고단한 성장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오래된 연애담은 여전히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