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임 스틸 히어> 리뷰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이 연출한 <아임 스틸 히어>는 2025년 8월 20일 개봉한 영화다.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각본상, 제82회 골든글로브시상식 여우주연상,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에서 <계엄령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된다.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의 12년 만의 장편 극영화 복귀작으로 브라질 군사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정치적 탄압으로 살해된 연방 하원의원 후벤스 파이바의 아내 우에니시 파이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브라질의 작가 마르셀로 후벤스 파이바가 집필한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만큼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브라질. 1964년 군부 쿠데타 이후 군부독재정권은 1971년, 점점 거세게 국민들을 억압한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하며 공포 정치를 통해 침묵을 강요하는 체제를 유지한다. 일곱 식구의 파이바 가족은 리우데자네이루 바닷가 근처에 저택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극히 평화롭던 어느 날, 루벤스 파이바가 심문을 받기 위해 불려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우에니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아빠 루벤스는 체포된 이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불법체포였지만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군관계자는 남편의 신변을 알려주지 않은 채, 돌아올 것이라고만 말한다. 되면서 우에니시와 둘째 딸도 심문을 요구당하며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간다. 좁은 공간, 끝없는 암흑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마주하며 무사히 나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남편의 신변을 물어볼때마다 딸을 들먹이며 겁박한다. 오랜시간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던 우에니시는 무사히 나와 남편의 흔적을 좇는다. 쉽지 않은 시도였다. 전에는 체포가 아닌 그냥 심문일 뿐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이곳에 온 적도 없다고 말했다. 체포되었다면 경찰 쪽의 관할이니 그쪽으로 문의를 해보라고 한다. 한편, 군관계자들은 파이바 가족을 계속해서 감시하고, 루벤스의 계좌마저 활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경험한 가족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과 우에니시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일상을 되찾고 싶은 욕망과 그럴 수 없는 현실은 괴리감을 일으킨다. 공간에 곳곳 남아있는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릴수록 더욱 괴로웠다. 군의 감시와 나빠지는 가정형편에 의해 유지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이 공간에서 살 수도 없었기에 소중한 보금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우에니시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만 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과 재회하고 싶다는 그 희망만으로 남편의 흔적을 추적했다. 독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력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고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는 동시에 루벤스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랜 시간 자신을 짓눌러온 불안감은 절망이 아닌 안도감으로 바뀌었고 그리움과 분노, 슬픔과 해방감이 뒤엉키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들은 마침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임 스틸 히어>는 침묵을 강요당한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묵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감독 바우테르 살리스는 실제로 어린 시절 파이바 가족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이 가족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조심스럽고도 진정성 있게 이 이야기에 접근했다. 모든 진실을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는 그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려 애썼다. 영화는 이들이 맞이하는 비극이 스스로가 빚어낸 것이 아닌 국가 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폭력의 산물임을 고발한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며 그 비극을 함께 견뎌온 가족의 시간을 따뜻하고 소중하게 다루어 내고 있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지켜낸 사람들이 '아직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브라질은 1964년 군부 쿠데타로 시작된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21년간 강압적인 군부 독재 통치를 해왔다. 초기 군사정부는 선출직 정치인의 임기를 종료하고 반대파를 축출하였으며 대통령의 간접선거제 도입과 정당을 해산시켰다. 1968년, 헌법을 폐기하고 의회를 해산시켰고 광범위한 언론 검열, 탄압, 집회 금지와 인신보호영장 정지 등 비상권한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했다. 또한, 군부는 정보기관과 비밀경찰 조직을 운영하며 감시·구금을 자행했고 불법체포, 고문, 실종 등 물리적 수단도 이용했다. 체포된 사람들은 군경부대나 ‘Casa da Morte’(사망의 집) 같은 비밀 구금시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흔적 없이 사라졌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집권 초기 수만 명(최소 5만 명)이 정치범으로 체포되었고 약 2만 명이 심각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군사독재 기간에 최소 434명이 정치적 박해로 살해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공식 집계는 살해 191명, 실종 210명(이후 유해 발견 33명 포함)이라고 한다. 희생자 대부분은 학생, 노동자, 교사, 언론인, 종교인, 인권운동가 등 다양한 계층이었고 군부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어 폭력을 가했으며 지금도 많은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1971년 연방의원 루벤스 파이바는 군경에 체포된 뒤 강제 실종되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군부에 의해 고문 후 살해되었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영화 <아임 스틸 히어>의 실화 배경이 되었다. 파이바의 배우자 에우니스는 홀로 다섯 자녀를 키우며 인권 변호사가 되어 남편의 진실 규명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에우니스 여사는 수십 년간 남편의 유해 반환과 보상 그리고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결국 정부는 1996년에야 그의 살해를 공식 인정했다. 1996년, 브라질 정부는 루벤스 파이바의 죽음을 공식 인정했으나, 1979년에 제정된 포괄적 사면법의 면책 특권으로 인해 군경 가해자들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는 브라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엄령과 군사독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 사는 국민이라면 이 영화의 아픔을 더욱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그 수많은 폭력이 더이상 지속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지금까지 총 16차례의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실질적인 국가 위기 상황 때문이 아니라, 군부 독재 세력이 권력을 찬탈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수단, 또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계엄령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무력화시키고,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고, 국가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폭거였다. 또한, 정치 견제를 위해 계엄을 선포하는 부정한 행위는 결코 합리화할 수 없다.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며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를 통합하고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앞장서 국민을 억압하고 진실을 왜곡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권력은 그 국민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아임 스틸 히어>는 그러한 원칙이 무너졌을 때, 개인에게 그리고 한 가정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기억하고 권력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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