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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구나.

영화 <페니키안 스킴> 리뷰

by 민드레


때론 모호한 것에서 명확한 답을 찾기도 한다. 웨스 앤더슨의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형상화하여 독특하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것도 그의 손에서는 화려한 색감을 띄고 있으니 말이다. <페니키안 스킴>은 웨스 앤더슨 다운 영화이면서 다른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25년 5월 28일 개봉하였으며 제7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는 매우 빠른 기간에 개봉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사업가, 자자 코다. 그는 항상 암살 위협에 놓여있었고 늘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날, 일어난 항공사고는 평소와 좀 많이 달랐다. 저편의 세상이 보일 정도로 죽다 살아난 코다는 자신의 숙원 사업인 '페니키안 스킴'을 완수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딸 리즐을 은빛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프로젝트에 앞서 아홉 아들이 아닌 딸 리즐을 상속자로 지정한다. 적의 방해로 자자 코다의 사업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업적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동업자들을 설득해야 했고, 자자 코다는 딸 리즐과 가정교사 비욘과 함께 페니키아로 떠나게 된다.



30년 간 공을 들인 일생일대의 프로젝트. 페니키안 스킴. 페니키아는 고대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에서 번성했던 해양 문명이다. 페니키안 스킴 프로젝트는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기 위한 야심 찬 사업 계획이다. 영화 제목 The Phoenician Scheme의 'Scheme'은 계획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책략이나 음모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부패하고 비윤리적인 측면이 암시된 것이다. 실제로 자자는 노예를 이용한 노동착취와 같은 비윤리적인 수단을 동반되며 부를 재창출하는 시스템을 계획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아서는 이러한 방식이 여러 차례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코다는 아들들이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기에 딸을 선택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영화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은 아니다. 수녀가 되려 했던 리즐은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자신이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진심을 감춘다. 사실 그녀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5살 때 수녀원으로 보내버렸던 과거에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첫 번째, 어머니의 사망원인을 밝히고 종교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환속한 리즐은 상속인 서류에 서명을 하며 상속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받고 환속 절차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수녀의 모습은 그 당시 노예제도를 묵인했던 중교의 이중성을 풍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정에서 리즐은 아버지가 어떻게 부를 축적해 가는지를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코다는 늘 죽음에 익숙한 상황이다 보니 "전혀 불안하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실제 상황은 위험천만한 상태이다. 하지만 정말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코다의 태도는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몇 차례 더 다녀온 후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신'을 경배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실현하는 딸 리즐의 모습을 통해 놓치고 있었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리즐을 자신의 복수를 해줄 후계자에서 진정한 딸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과거와 현재 행했던 죄악을 되돌아보고 선행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삶의 끝에서 느끼는 것들과 인간의 손으로 도무지 쥘 수 없는 것들을 탐하지 말라는 주제의식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또한, 자자는 여러 사업가들을 차례대로 만나며 대화를 시도한다. 각자의 말을 내뱉는 그들의 모습이 소통이 단절된 현대사회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과 가치관을 이미지로 바꿔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특히 이번에도 아름다운 영상과 완벽한 대칭이 돋보인다. 노골적인 색채 대비는 이전의 영화에 비해서는 덜한 편이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모습은 특유의 블랙코미디 감성이 배가된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이때까지 봤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야기가 두드러지고, 사회의 문제점과 주제의식이 잘 드러났던 영화였다. 난해하게 펼쳐졌던 지난 작품들과는 다르게 <페니키안 스킴>은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복잡한 관계를 세세하게 풀어내며 관객을 납득시킨다. 무엇보다 체계 잡힌 이야기의 구성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다만, 사후세계를 표현한 부분이 불분명하고 첩보물로서의 빈약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위해 변해가는 과정은 분명한 따뜻함을 전해준다. 그래서인지 <그랜드 부다 페스트 호텔>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 당시에 이 영화를 볼 때는 내용이 없는 미장센만 두드러지는 영화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비유, 상징, 대구를 반복하며 지나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지금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이번 영화는 특히 그의 필모를 다시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특히 배우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 이리저리 배치하며 연극처럼 극을 진행시켰던 연출방식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등장인물들의 '의식'이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활기차게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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