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씨너스: 죄인들> 리뷰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연출한 <씨너스: 죄인들>은 2025년 5월 28일 개봉한 영화이다. 미국판 <파묘>라고 홍보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의 뱀파이어 소재의 영화이니 참고하시길. 영화 속의 역사나 문화적 배경을 잘 모른다면 다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무딘 감각을 깨우고 무지했던 지난 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1932년 미국.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은 시카고 갱단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미시시피로 돌아온다. 모은 돈으로 주크 조인트를 열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개업을 자축하기 위해 친한 친구들을 모두 초대해 화려한 파티를 연다. 새미의 강렬한 노래로 파티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불청객이 찾아오며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게 되는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다.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잔혹한 식민통치는 '바야돌리드 논쟁'으로 이어졌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이성과 문화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예로 삼거나 가혹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간주한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그때부터 아메리카 대륙 개척을 위한 '대서양 노예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본토에서 납치되거나 전쟁의 포로로 팔려와 노예가 되었다. 흑인은 피부색만으로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으며 더 나아가 재산으로 취급되었으며 이러한 노예제도는 합법적으로 수백 년간 지속되었다.
17세기 초, 북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시작한 유럽인들은 광활한 신대륙의 경제적 가치가 큰 자원을 발견한다. 미국남부지역의 기후와 토양은 담배, 쌀, 인디고, 면화를 재배하기에 적합했다. 이러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은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부리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에서 온 질병에 취약했고, 잦은 도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계약 노동자들도 있었지만 값싼 노동력을 바랐던 농장주들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노동력의 중심이 되었다.
*17세기 초 - 담배, 19세기 - 면화
19세기 초 대서양 노예무역은 종식되었으나 미국 남부 주는 농업이 중심산업이었던 만큼 노예제는 핵심적인 경제 제도였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링컨이 대통령이 되면서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고, 북부가 압도적인 우세로 승리하며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이 있었고 1865년 수정헌법 제13조에 의해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폐지가 되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노골적이고 부당한 인종 분리 정책은 지속되었다. 바로, 짐 크로(Jim Crow) 법을 제정하여 흑인들의 권리를 빼앗고 차별했다. *짐 크로우는 1830년대 미국의 한 백인 코미디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을 조롱하듯 춤추고 노래하던 인종차별적 캐릭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kkk와 같은 백인우월주의 집단에 의한 테러, 린치, 방화 등 폭력과 협박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방된 상태였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웠던 그들은 다시 농장주나 새로운 지주에게 찾아가 불리한 조건으로 소작농 계약을 맺게 된다.
착취나 다름없는 노동환경이었기에 그 당시 농장의 노역자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마을 바깥쪽 부근의 무너져가는 건물이나 집에서 모임이 형성되며 '주크 조인트'가 시작된 것이다. (배럴하우스로 불리기도 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힘든 노역자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하고 음악을 듣거나 춤을 추거나 겜블링, 술을 먹고 즐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발전한 것이 바로 블루스다. 블루스(Blues)는 19세기 중엽, 미국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미국으로 넘어온 미국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창시한 장르다.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우울과 슬픔을 의미하는 블루 데빌스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루스는 그 시절 해방 흑인의 비참한 생활환경, 인간적인 슬픔, 고뇌, 절망감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은 흑인 문화의 본체다. 블루스 음악은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에 위안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진실된 음악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있다. 이 재능은 공동체를 치유하는 힘이 있지만, 악(evil)을 불러들이기도 한다.”이라는 내레이션처럼 블루스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백인 주류 사회에서는 열등하거나 저급한 문화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블루스는 공동체의 기쁨, 영혼, 저항정신이 모두 담겨있다. 억압받는 흑인 공동체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마음껏 내지를 수 있는 영혼의 언어였다. 하지만 번번이 그들은 위협을 받는다. 그 이유는 너무 단순하게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거슬렸기 때문이다.
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만큼, 이 공동체는 자긍심의 원천이었고 동시에 언제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모두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새미의 노래는 과거의 아프리카 부족의 춤꾼들, 미래의 힙합 댄서, DJ, 그리고 불청객까지 이곳으로 이끌었다. 불청객의 정체는 뱀파이어였다. 그들은 새미의 음악에 이끌려 왔다고 말하며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대가는 영혼을 내어주는 것이다. 수백 년 전, 침략자들이 접근했던 방식과는 조금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영원한 자유'를 미끼로 삼아 공동체 내부에 스며들기 위해 내부의 적을 심는 등의 시도를 하지만 이 '공동체'는 믿지 않는다. 흑인 문화를 흡수하고 변질시키려는 움직임이자 공동체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와 닮아있었다.
뱀파이어는 흑인들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로, 의식 없는 영혼이 몸에 갇혀 밤에만 움직일 수 있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지만 타인의 생명과 피를 착취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 그들은 타인에 기생하여 악의 집단과 결합하여 이들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희생정신이 반영되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누군가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과거의 잘못으로 지키지 못했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자신의 실수로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속죄의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영화의 결말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면서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더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들과 주제들이 들어가면서 좀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숨은 의도와 반전이 나오며 완성도를 높인다. 초대받지 아니한 손님이지만 일반적인 침략자와는 달리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 또한 흥미로웠다. 다만, 동양인 캐릭터의 활용성이 상당히 아쉬웠다. 안 나오는 것만 못한 설정이라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더욱 커질 우려도 있어 보였다. 백인과 흑인 사이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을 뭉그러뜨려 동양인으로 표현하는 것도 지양되었으면 좋겠다. 창작자들이 다양성을 다룰 때, 정말 신중하고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