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8일 후> 리뷰
재난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분노라는 질병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전쟁을 치르고 있고 인간성을 내다 버린 지 오래다. 무엇이 중요한지 본질은 사라진 채 모두가 서로의 잘잘못만을 따지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생명이 생을 마감해도 정쟁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문득, 영화를 보다가 영화 속 이야기처럼 전 세계에도 '분노'라는 바이러스가 퍼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분노바이러스'가 퍼지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대니 보일 감독의 2002년 영화 <28일 후>다. ‘분노’라는 감정이 세계를 집어삼켜 만들어진 너무나도 낯익고도 차가운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영국의 한 실험실. 동물 보호 운동가들이 들이닥치며 갇힌 침팬지를 풀어주라 소리친다. 연구원이 그들에게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를 하려는 그 순간, 침팬지가 갇힌 우리를 열어버리며 공격이 시작된다. '분노 바이러스'가 유출된 28일 후,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어 입원 중이었던 짐이 깨어난다. 텅 빈 병원에서 밖으로 나와봤지만 런던 시내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찾아 헤매던 짐은 성당에 들어갔다가 시체 더미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다가오는 신부에게 말을 걸려는 그 순간, 감염자들이 엉겨 나와 그에게 달려든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짐은 또 다른 생존다인 셀레나와 마크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형자들에게 폭력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분노 조절 인자를 분리시켜 분노 수치를 내리는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침팬지에게 실험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변이 하며 분노 바이러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도시는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정부와 사회는 붕괴되었다. 이 '분노 바이러스'로 인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달랐다.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과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이들도 있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분노'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나 재앙이 시작된 것처럼 상생하지 않은 결과는 '비극' 그 자체였다.
그들이 희망을 찾아 도착한 군 기지는 사실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온 구조 신호는 사실 '함정'이었다. 군인들은 '번식'과 '인류 재건'을 명분 삼아 여성들을 유인한 것이다. 그것을 계획한 이에게 여성은 성욕을 해소하고 자신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이처럼,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감염자들과의 싸움보다는 사람들과의 싸움이 더욱 광기 짙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 소녀에게도 어둠의 손길을 뻗치는 장면은 문명이 붕괴된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감염자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잔혹한 광기는 감염자들의 맹목적인 분노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에 맞서기 위한 행동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시대의 인간다움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한 만큼 영화의 화질은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실제 상황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어 호평을 얻었다. 특히 종말 이후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모습을 극대화하고 있어 더욱 강렬한 몰입감을 준다. 감염자들의 빠른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오면서도 산만한 촬영기법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긴장감을 더한다. 감독은 어쩌면 이러한 재앙이 찾아올 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열과 혐오의 시대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분노를 심었을 뿐인데 세상은 멸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절박함 만큼이나 쉽게 무너지는 수많은 인간성을 나열한다. 이 영화에 호감이 갈 수 없는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양한 인간 군상 속에서 발견하는 누군가의 모습 혹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