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8주 후> 리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인간은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다. 단 하나의 실수로 모든 게 다시 시작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 고난을 헤쳐나갈 것인가. 희망을 맛본 만큼 두 번째 찾아온 절망은 더욱 큰 절망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분열보다 더 무서운 방심이라는 재앙이 어떻게 모든 걸 다시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28주 후>는 전편과는 또 다른 절망을 선사한다. '28'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자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디요 감독의 2007년 작이다. 감독은 바뀌었지만 영화 분위기와 긴박한 전개 그리고 거칠고 날 것 같은 영상미는 여전히 '28' 시리즈 특유의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돈과 앨리스는 몇몇 생존자들과 함께 한 노부부의 저택에 숨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소리를 지르며 저택 문을 두드리고 그를 들여보낸 순간 감염자들이 저택 안에 들이닥쳤다. 돈은 살아남기 위해 탈출한다. 그 뒤로 돈은 미군 캠프에 도착하여 대피구역의 책임관이 되었다. 스페인으로 수학여행을 떠나 있던 태미와 앤디가 영국으로 귀국했고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태미와 앤디는 어머니의 사진을 챙겨 오기 위해 안전지대를 빠져나와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앨리스가 살아있었다. 보균자*였던 것이다. (감염은 되었으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진 자) 앨리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기쁨에 돈은 앨리스와 입을 맞추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
앨리스를 버렸다는 죄책감과 살아있다는 놀라움의 감정이 든 돈은 그녀를 찾아가 사과하고 입을 맞춘다. 하지만 그 순간 바이러스에 전염되고 만다. 개인의 죄책감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재앙을 재점화하는 비극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한 번 절망을 겪은 이들은 '재건'을 통해 희망을 다시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인간의 감정이 때로는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여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대목이었다. 한 가족의 감정적인 실수는 공동체가 쌓아 올린 재건의 씨앗을 모두 무너뜨리고 원점으로 돌려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 방심은 언제나 개인의 실수로 인해 시작되며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돈의 감염을 알지 못했던 NATO 군은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누가 감염자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코드 레드를 내려 모든 사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 잔혹한 선택은 극단적이고 비인간적인 대처였다.
<28일 후>가 '발병'과 '생존'에 집중했다면, <28주 후>는 '재건'과 '통제 실패'에 집중하고 있다. '28' 시리즈의 세계관을 한층 더 확장한다. 전작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마비된 것처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실상은 영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바이러스 통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설정 상 분노 바이러스가 영국을 휩쓸고 지나간 후 6개월, 미국 군대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일정한 규칙을 파악한다. 감염자들이 사람을 잡아먹지 못하고 5주 동안 영양섭취를 못하면 아사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연합군은 런던에 진입하여 영국 재건을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생존자들을 외부로부터 격리된 안전지대로 데려와 정착시키기 시작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하지만 통제 불능의 상황에서 권력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이고 비인간적인 선택이 또 다른 비극을 야기하고 심화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이 후속작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28개월 후가 무산되면서 28년 후의 이야기를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감염보다 무지와 방심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이 재난은 개인의 육체를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믿음과 질서를 붕괴시키는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를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