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파빌> 리뷰
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5년 작 <알파빌: 레미 꼬숑의 이상한 모험>은 SF 누아르 영화로 제15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이다. SF와 첩보물이 버물려진 영화지만 공상과학이 한 방울 정도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시각효과나 미래 기술의 구현보다는 점점 사라져 가는 인간성과 감정, 그리고 비이성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에 무게를 둔다. 인류를 통제하려는 인공지능 시스템과 그에 저항하는 인간 사이의 충돌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현대 사회에서 점점 붕괴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는 영화이다.
먼 미래, 아웃랜드에서 온 첩보원 레미 꼬숑은 도시 알파빌에 잠입한다. 알파빌은 감정이 통제되고 논리와 이성만이 지배하는 미래도시다. 레미 꼬숑은 알파빌을 창조한 폰 브라운 교수를 암살하고 인공지능 알파 60을 파괴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전쟁, 환경오염 등)를 막기 위해 통제권을 쥐고 인류를 지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감정이나 비논리적인 행동은 모두 오류이자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오류를 제거하고 완벽하게 질서 정연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알파빌 60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를 위해 알파빌은 모든 인간의 감정과 비논리적인 사고를 통제한다. 알파빌에서는 사랑과 의문(왜?), 야심과 관련된 단어들은 사전에서 삭제되고 사용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는 자들은 변절자로 간주되어 즉시 처형된다. 사형장은 수영장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된다. 처형 대상자는 총에 맞고 물에 빠진 뒤, 살아 있는 경우 싱크로나이즈드선수들이 뛰어들어서 마무리 짓는 기괴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루하루 사라지는 단어와 금지되는 생각은 인간 고유의 성질인 감정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영역을 제거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성경 대신 과학사전을, 시 대신 공식을 계속해서 주입하려는 시도에서 볼 수 있었다. 논리적인 규칙과 데이터에 따라 움직이는 완벽한 질서와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통해 오류투성이인 현재 인간 종을 완벽한 논리를 가진 종으로 변환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래는 알파 60의 기계적인 언어와 철학적 독백을 통해 어떻게 인간성과 언어를 해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사다.
누구도 과거에 살지 않았다. 아무도 미래에 살지 않을 것이다. 현재가 모든 삶의 형태이다. 그것은 어떤 힘도 우리로부터 빼앗을 수 없는 소유물이다. 시간은 내재적으로 회전하는 원과 같다. 내려가는 호는 과거이고 올라가는 호는 미래이다. 이것이 말할 수 있는 전부다. 단어가 자신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의미가 자신의 말을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다. 고통의 상태 속에서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늘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과 다른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가? 우리 전에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누구도 없었다. 여긴 우리 밖에 없다. 우린 유일하다. 유일하다. 단어들의 의미와 표정의 의미는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 분리된 단어나 그림에서 분리된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알파빌의 철저한 통제와 공포 정치에서도 인간 본연의 감정과 가치관은 완전히 소멸될 수 없었다. 알파빌이라는 도시에서 '정상'인 사람을 제외한 감정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제거되었다. 양심이나 슬픔, 또는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면 사형이라는 처벌이 내려지는 만큼 감정을 숨기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의 정체는 레미 꼬숑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억압적인 통제 상황에서도 저항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자와 정의가 같은 J로 시작되는 걸 알았나?"라는 말처럼. 외부 세계에서 온 레미 꼬숑은 체제 전복을 위해 잠입한 첩보원이었다. 레미 꼬숑은 도시의 남성 주민들이나 외부 방문자들을 밀착 마크하는 여성들을 만나지만 그중에서도 나타샤에게 관심을 가진다. 우선 그녀는 자신의 목표인 폰 브라운 교수의 딸이었고 조금은 달랐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감정적인 교류를 지속하며 서로에게 조금은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레미 꼬숑은 '시집'을 통해 금지된 단어인 사랑과 왜를 가르치며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인간성 그리고 감정을 일깨운다. 점차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나 '양심'의 가치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해결책임을 보여준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영역은 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고 현재만을 강조하는 알파빌의 통제 방식에 맞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행동할 때 진정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샤가 마지막에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모습은 알파빌의 통제에서 벗어나 감정과 자유 의지를 되찾은 인간으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알파빌과 단절되었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불확실하지만 희망찬 미래를 모두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라는 말을 기억해
<알파빌>은 기존 영화들의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파괴하는 노벨바 그 특유의 실험적인 연출을 사용한다. SF 누아르 장르에 속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나 긴장감 넘치는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대화나 배경에 숨겨진 상징과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특히 영화의 전개와 대사가 많아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새로운 시도나 은유적 표현에 집중하며 영화가 어떤 은유와 상징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영화가 다르게 보인다.
논리와 효율성만을 좇는 사회가 어떤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왜'라는 질문과 감정은 '생각'을 통해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알파 60의 목소리는 거부감이 들정도로 귀에 거슬린다. 의도적으로 기계음으로 인간과는 달리 감정이 배제된 차갑고 건조한 표현된다. 대화를 통한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정보 전달과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화살표의 방향 변화는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레미 꼬숑이 알파빌로 들어갈 때, 오른쪽 화살표를 보게 된다. 알파 60이라는 논리와 이성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질서와 체제 속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정체를 들켰을 때, 나타나는 왼쪽 화살표는 변화를 의미한다. 시스템에 순응하는 척했던 그가 대항하거나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특히 레미 꼬숑은 시적인 언어와 감정을 통해 나타샤를 깨우고 인간성을 되찾게 돕는다.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회복시키고 자유와 희망을 불어넣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