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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혼란을 온통 헤집는 세상에서 마주하는 욕망.

영화 <네이키드 런치> 리뷰

by 민드레


세상의 사기꾼들이여 너희들이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내면의 본성이다.
-윌리엄 S. 버로스-


데이비드 크로넨 버그 감독의 1991년작 <네이키드 런치>는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제42회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미개봉작이었으나 34년 만인 2025년 6월 25일에 개봉한다. 기괴한 비주얼과 상징적인 요소들을 통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특한 세계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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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충제에 중독된 해충 방역사 윌리엄 리와 와이프 조앤.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는 실수로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미스터리한 세계 ‘인터존’으로 도피한다. 그는 그곳에서 거대한 벌레, 살아 움직이는 타자기, 지네로 변한 인간,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성까지 모든 게 다 이상하다. 보고서를 쓰는 동시에 '네이키드 런치'라는 소설을 집필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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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환상? 현실?


그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끝없는 환각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마약중독과 금단증세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또한, 그는 작가로서의 삶이 아닌 해충 방역사로서의 삶을 택하지만 쉽지 않았다. '윌리엄 텔' 놀이 중 조앤이 죽게 되면서 그의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데, 모순적이게도 조앤의 죽음은 그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마치 그가 글을 쓰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의식처럼 그녀의 죽음은 반복됩니다. 대외적으로는 '보고서'지만, 그는 《네이키드 런치》라는 이름의 소설을 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처음엔 도피처에 불과했던 인터존은 점차 그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 공간이 된다.


그는 인터존이라는 공간에서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인터존은 현실과 닮아있지만 불안정한 곳이다. 벌레 형태로 변하는 타자기, 항문 같은 입으로 말하는 외계 생물, 정체불명의 정보 기관원들, 그리고 눈길을 끄는 성적 지향까지. 도피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무엇이 현실인지 환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분명한 건 인터존이 아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곳에 더 머물다간 존재 자체가 붕괴되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곳에서는 환각으로 인한 행복보다는 현실의 불안감이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형태로 찾아왔다. 고통스러운 중독의 과정이었지만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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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정체.


머그웜프는 괴상하다. 입은 항문, 몸은 벌레다. 먹는 기관과 말하는 기관과 배설하는 기관이 구분되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 존재한다기보다는 마약중독으로 인한 환각으로 보인다.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무너져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입이 항문인 이 생명체가 내뱉는 말은 다소 불쾌하다. 배설과도 같은 행위로도 보일 수 있는 이 '입'은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나 타인의 평가에 대해 느끼는 무의식적인 불안감과 혐오감을 반영한다. 정제되지 않고 독성을 지닌 언어가 여과되지 않은 채 보고서에 드러나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내면을 토해내면서 혼란스러운 현실을 정리하고 균형을 되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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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S. 버로스의 세계로.


6월 20일 개봉한 영화 <퀴어>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두 작품 모두 윌리엄 S. 버로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현실과 환각, 현실을 오가는 윌리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언뜻 이해될 것 같기도 했다. 영화는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다고 하니 원작 소설에도 관심이 갔다. <네이키드 런치>는 이해보다는 오롯이 경험하고 감각해야 하는 영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큼 불쾌하고 기이한 이 세계는 작가로서의 고통, 금단 증상, 성정체성, 죄책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제목에 담긴 의미가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한다. '벌거벗은(Naked)'이라는 단어는 아무것도 가려지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진실을 가리킨다. 사회의 위선,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 그리고 마약 중독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민낯까지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런치(Lunch)'는 일상적인 행위이자 각자의 삶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마약 중독 상태에서 경험했던 분열된 자아, 관찰자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한다. <퀴어>와 마찬가지로 <네이키드 런치>는 명확한 것보다는 감각과 상징, 불쾌함이 교차하는 '감정'이 남아있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불편하고 기이한 세계는 인간의 내면을 오롯이 마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 <퀴어> 리뷰


https://brunch.co.kr/@mindirrle/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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