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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파괴적인 오만에도 공존을 포기하지 않는 자연.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리뷰

by 민드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작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84년 개봉한 작품으로, 감독이 직접 연재한 동명의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거대한 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구, 독성의 숲 '부해'와 그 속에 서식하는 거대 곤충들, 그리고 생존을 위해 대립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공존’이라는 답을 찾아 나서는 한 소녀의 여정을 담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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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거대 산업 문명이 붕괴하고 천년 후, 녹과 금속으로 황폐해진 대지를 독이 가진 균류가 장악했다. 그들은 썩은 바다 '부해'라는 숲을 만들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바람의 계곡은 부해의 독성 포자가 마을로 넘어오는 것을 막는 평화로운 곳이다. 하지만 대제국 토르메키아 군의 대형 수송선이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토르메키아는 이를 빌미로 나우시카를 인질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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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붕괴한 세상에서도 끊이지 않는 전쟁


수송선 추락 사건을 빌미로 공주가 이끄는 토르메키아군이 바람의 계곡을 점령한다. 부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바람의 계곡을 거점으로 삼아 거신병을 부활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거신병은 불의 7일이라는 대전쟁에 사용되어 온 세계를 불태울 만큼의 큰 힘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영화에서는 거신병의 발사 한방에 수백 마리의 오무가 사라질 정도다. 이처럼 토르메키아의 목적은 거신병을 부활시켜 부해를 불태우고 지구를 정화하려는 계획이지만 그것은 파괴에 가까운 일이었다. 겉으로는 지구의 평화를 외치지만 다른 국가들을 속국으로 만들며 지구 평화를 위한 일이라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행보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이들은 세계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제국주의적 지배 야욕을 실현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거신병은 핵무기를, ‘불의 7일’은 세계대전을, 토르메키아는 제국주의 국가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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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시카, 공존을 택하다


주인공 나우시카는 단연 돋보인다. 그녀는 폭력을 꺼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을 실천으로 옮기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무를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려 하지만, 나우시카는 조용히 다가가 그들을 다른 길로 유도한다. 오무는 무리를 지어 다니며 누군가를 건드리면 반드시 다시 돌아와 침략자를 응징한다. 나우시카는 오무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무조건적인 제거 대신 분노를 이해하고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가 부해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인간의 전쟁으로 인해 오염된 자연을 정화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부해의 목적과 전쟁의 사실을 알게 된 나우시카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말려보지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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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과의 놀라운 접점


영화를 보며 자연스레 <듄>이 떠올랐다. 인류의 기술이 발전되었지만 대전쟁으로 인해 문명이 붕괴한 지구가 배경이다. <듄>은 사막행성 아라키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유독한 부해로 뒤덮인 지구를 그린다. <듄>에는 사막의 거대한 벌레인 모레벌레가 등장하며 행성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프레멘 부족은 모레벌레를 신으로 여기며 '샤이 훌루드'라 칭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샤이훌루드는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막 생태계를 유지하는 존재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거대한 곤충인 오무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작품 모두 거대 생명체가 인간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지만 동시에 행성의 균형을 지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듄>에서는 폴 아트레이데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나우시카가 메시아적 구원자로 등장한 것처럼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한다. 인간의 오만으로 파괴된 자연을 구원하고 공존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영웅적 존재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 스스로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연과의 진정한 공존만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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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방대한 세계관과 철학을 담아내기에 9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시간이 된다면 원작 만화를 꼭 직접 보고 싶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핵심주제만큼은 명확하다.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간의 탐욕은 전쟁을 반복하게 만들고, 그보다 더 무의미한 희생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소박함과 노동의 가치를 잊고 자연의 근본을 훼손한 이 사회에 이 영화는 단호하게 경고한다. 사람은 결코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야 할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고. 진정한 평화는 파괴가 아닌 이해와 공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우리는 암세포처럼 자연을 갉아먹고 있다" 라는 말이 맴도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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