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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속 조용한 전쟁, 침묵 너머 더욱 빛나는 이름들

영화 <그림자 군단> 리뷰

by 민드레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꿈꾸며 저항하던 사람들은 어떤 신념을 가졌을까. 세상이 외면했던 그들의 신념과 희생이 모여 역사를 뒤흔들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1969년작 영화 <그림자 군단>은 고요하고 처절한 싸움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끝내 말하지 못한 이름 없는 저항들의 기록이다.



나치가 점령한 비시 정부 시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레지스탕스의 리더 필립 제르비에는 동료의 밀고로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마르세유에서 동료들과 재합류해 자신을 배신한 자를 처형하고 저항 활동을 이어간다.



레지스탕스 (저항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 · 비시 정부에 맞서 싸운 저항 조직이다. 초기엔 소수였지만 1943년 FFI로 통합된 뒤 철도·통신 사보타주, 정보 제공, 탈출망 구축 등을 통해 연합군 노르망디·프로방스 상륙작전의 진전을 가속화했다. 참여자는 인구의 1~3 %에 불과했으나, 1944년엔 40만 명 규모로 늘어나며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다. 무엇보다 존재 자체가 프랑스인의 자존심·명예를 지키는 상징이었고, 귀족·노동자·학생·이민자 등 다양한 계층이 공동 목표로 연대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뚜렷한 성과를 얻는 것 자체가 힘들고 나치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위험 속에서도 신념 하나로 싸움을 이어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위였다.



철저한 감시 체제 아래 놓여 있었기에 모든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특히나 저항운동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뚜렷한 성과를 내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 활동하는 만큼, 빛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고, 세상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조차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그만큼 복잡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때로는 내부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해 왔던 동료의 목숨을 거둬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조직은 와해되고 개개인이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위해 더 냉혹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영화에서는 신념과 생존 사이에서 타협해야 했던 고뇌가 반영되어 도덕성을 포기한 대신 조직과 이상을 지켜야 했던 이들의 처절함이 드러났다. 전반적으로 차갑고 절제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자유라는 목표 하나에 다가가기 위해 수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고, 인간성마저 지워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누아르와 첩보물뿐만 아니라 레지스탕스 일원들이 겪었던 위험, 배신, 그리고 내면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빛에서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독과 책임, 침묵의 무게를 담아낸 작품이다. 담담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전반을 지배하며 그들이 느꼈을 고독과 불안감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용기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깊은 감동과 숭고한 인간 정신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멜빌 감독은 자신이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구상하고 제작했지만 개인적 감정이나 애국적인 색채를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덕분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 개봉 당시 <그림자 군단>은 큰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를 받아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멜빌 감독은 독립적인 영화 제작사와 촬영소를 설립하여 외부 영향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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