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완성된 자매들의 멈춰버린 계절 뒤의 침묵.

영화 <처녀 자살 소동> 리뷰

by 민드레


2000년 개봉한 영화 <처녀 자살 소동>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데뷔작으로 제52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 초청작이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소설 <버진 수어사이드>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97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웃 소년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다섯 자매의 이야기는 1970년대 미국의 정서와 억압된 여성성 그리고 성장기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yQAGjSghJ88bVWLRskYJYfrPx4x.jpg


1970년대 미국의 한 마을. 리스본 가족의 다섯 자매 중 막내인 세실리아가 자살을 시도한다. 병원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상담사의 권유로 이웃 소년들과 함께 파티를 연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도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방 안으로 들어간 세실리아는 다시 자살을 시도해 세상을 떠난다. 세실리아의 죽음 이후, 리스본 가의 부모는 자매들을 더 엄격하게 통제했다. 그 후 트립 폰테인과의 교류 후 통금 시간을 어긴 럭스를 중점적으로 자매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며 집 안에 가둔다.


z8lHMxJ8anZnS8iNb3ebw0HQ8mF.jpg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배출구를 만들어주라는 조언에 따라 파티를 했으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터라 세실리아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자매들은 정상적으로 학교로 등교했고 일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은 부모들은 자매들을 바깥세상과 격리시키고 감정이나 사고방식을 통제하려 드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려 든다.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욕구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들을 여우처럼 굴되, 내어주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자매들은 상상 속에서 씨이바매즈사원으로 여행하거나 나뭇잎 빗자루를 가진 노인들과 여행했다. 우리가 그녀들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에게 영원히 상처를 남기는 이런 불가능한 여행을 통해서 였다.


pzjem0QFLdpNOKujZBSnkqh3IRo.jpg


소년들의 시선으로 다섯 자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설정이 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성장한 소년들의 회상으로 그리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원작소설도 소년들의 시선으로 이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니 이것은 의도적인 거리감을 연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래 소녀라면 더욱 그녀들의 상황을 훨씬 잘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소년들을 화자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 이 자매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며 누군가는 알아봐 주길 바라는 답답한 상황을 화면 너머로 연출하려 한 것이다.


소년들은 자매들의 도움 요청이 있기 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자매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면서도 매혹적이었다. "그녀들은 이미 우리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라는 말처럼. 자매들이 의도적으로 소년들에게 단서를 남긴 후 그들을 지켜보고 관찰하고 궁금해하지만 그것 또한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의도적으로 자매들이 힌트를 주지 않는 이상 본질적인 이해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자매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자매들도 그들에게 온전한 아픔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매우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소년들이 무사히 자매들을 구출하고 상상처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들이 온전하게 이해했고 바라보았던 자매들이 안고 있었던 불안, 억압, 상실의 감정은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소년들의 시선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모습이 씁쓸해졌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야 하지만, 리스본가의 부모들은 지극히 폐쇄적이기에 타인이 개입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제한적인 접근과 한계로 인해 더욱 그녀들을 구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자매들에게 큰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정황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삶이지만 그것의 통제권을 쥔 사람은 바로 리본가의 부모들이었다. 어떤 소통과 감정의 분출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로서 말이 통하지 않는 벽에 막혀 균열을 반복하며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한다.


'우린 숨막힐 지경이에요.'
'너희들은 여기서 안전하단다.'
'여기선 숨을 쉴수가 없어요'


6b6UpsOXmjO8mJKYsGTG9HW49CN.jpg


사회전반적으로 불안한 미국 1970년대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은 모두에게 각기 다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이 다섯 자매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지는 모르나 정해진 사회적 틀은 그들을 억압했다. 세부적으로는 그들의 부모가 억압한 것이지만, 그 억압은 시대의 사회적 규범과 맞물려있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여성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받고 진정한 감정이나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이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여성의 역할은 가정에 충실하는 존재로 한정되어 있었고 감정을 드러내거나 개인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개성이나 욕구를 부정하고 그 잠재력을 억제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다. 사춘기는 누구가 겪지만 그 시기를 잘 겪어야만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그것을 통제하고 제어하려고 하니 좋을 리 만무했다. 그것을 건강하게 발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방출되어야 할 감정들이 고이며 더욱 큰 문제를 발생시켰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자살문제와도 맞물려 있었다.


8LAm0Efhr5YObRyQDn5BHs6sIUl.jpg


현재에서 과거의 시점, 그리고 소년들이 소녀들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했다. 사춘기의 불안을 표현하거나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영상미가 매력적이지만 감정선이 그를 못 따라간다는 평도 있지만 의도된 거리감을 통해 소녀들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소년들의 시선으로 비치는 비극이 파편적인 형태로 전달되며 자매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룬다거나 하는 완성된 형태의 이해를 제공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시점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내면의 거리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 자매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졌다.


3iSVU9VVNB84bZkM0azhl2bwNhZ.jpg


영화 제목은 영화의 줄거리나 주제의식을 반영하기에 굉장히 중요하게 지어져야 한다. 원제보다 더 의미를 잘 담고 있는 제목 번역의 예시로 사랑과 영혼,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금발이 너무해 이 있는 반면, 원제 그대로 가거나 오역으로 인해 영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해치는 영화가 있다. 예시로 컨택트, 가을의 전설, 고추냉이: 레옹 2가 있다. 차라리 원제를 그대로 따라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제목 번역이 굉장히 아쉬웠다. 센스 있는 영화 제목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더 높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원제인 버진 수어사이드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keyword